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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김정희 수식득격

차화로 2007. 6. 29. 12:3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백창우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비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든 길 위를 소리없이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내 안에 뭐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면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나 가벼워질까

아무 때나 혼자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사는 게 고단하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세상은 두 걸음 달아난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따라잡지 못한다.

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안개처럼, 바람의 낮은 노래처럼 가벼워져

길이 끝나는 데까지 가 봤으면 좋겠다.

  

제 지인 중에 한 달에 한번 정도 금식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한번 시작할 때 3~4일 동안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끼만 걸러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은 저로써는 처음에 무척 의아했습니다. 왜 사서 고생을 할까? 배고파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들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몸무게를 줄이고자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금식의 이유를 물어보니 뜻밖에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너무 풍족하게 사는 것 같아요. 또 금식을 하면 몸 뿐 아니라 마음이 가벼워지고 묘한 성취감도 생깁니다

 

인간의 욕망 중 가장 강력한 욕망이 세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 합니다. 그 중에서 물질의 소비에 기초한 욕망은 식욕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좀 다르기도 하고 거식증 같은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병도 있긴 하지만 먹지 않고선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식욕만큼 강력한 욕구도 없지 싶습니다.

 

그렇게 아주 순수하고 본질적인 욕망을 억제하는 과정을 겪으므로 서 아무런 통제 없이 소유와 소비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금식을 통해 가벼워짐으로써 새로운 의욕과 맑은 정신으로 충만 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울수록 얻는 것. 바로 그런 이치일 것입니다.

 

인생에서도 무엇인가 자꾸 얻고자 만 하면 그만큼 번뇌와 고뇌는 깊어가게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고한 그 무엇을 버릴 때만이 참다운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가벼움 이란 무거움 의 반대말이 아니라 기름지다 의 반대말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벼움은 가는 것이고 얇은 것이기도 한 불필요한 요소가 제거된 순정 된 그 무엇을 뜻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들이 있습니다. 바로 추사 정희의 난 그림들입니다. 추사하면 추사체를 떠올리며 글씨만 연상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추사체의 요체는 기발하고 파격적인 구도와 그림 같은 회화 미 입니다. 따라서 세한도와 같은 문인화 보다는 서법으로 쳐나간 난 그림이 바로 김정희가 추구했던 정신세계를 더욱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난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일명 부작란도라 불리는 그림입니다.

 

 

<불이선란도> 지본수묵.  55.0 X 31.1 cm  

,,화,인의 일치를 보여주는 조선 최고의 난 그림.

작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보았는데 숨을 막힐 만큼 사람을 압도하는 그림이다.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난 그림을 그만둔 지 20년 만에 그린 그림입니다. 물론 20년 동안 한번도 그리지 않았다고는 믿기 어렵지만 아무튼 노년의 자신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룬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불이선란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궁무진한 그림인지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소개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하고픈 그림은 불이선란도를 그리기 전 약 20년 전에 자신 스스로 난 그림의 끝을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그림. 추사 난 그림의 대표 화첩 간송미술관 소장 [난맹첩]에 있는 수식득격(瘦式得格) 입니다.

 

 

수식득격(瘦式得格)  가늘게 치는 법식에서 제 격을 얻다 지본수묵. 27.0 X 22.9 cm

  

제시를 쓰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내려가는 방법인데 거꾸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내려 갔습니다. 이는 난입의 방향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또 글씨 중에서 유독 수()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약간 크게 쓴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제시에서 가장 중요한 글 짜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는 난엽을 보완해주고 하듯 굵고 힘있게 써져 있는 제사를 먼저 살펴보면 此爲瘦式 寫蘭之最難得格者 차위수식 사난지최난격자

 

여기서 수()는 파리할 수로써 여리다 라는 의미입니다. 난엽을 가늘고 여리게 그린다는 것이 이 그림에 핵심이란 걸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전체를 해석하면 이는 가늘게 치는 법식으로 했으니, 난 치는데 가장 제격을 얻기 어려운 것이다라는 뜻으로 마치 누군가에게 난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듯한 말투인데 이는 난맹첩을 만든 이유가 누군가에게 난치는 법을 전해주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한번 찬찬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난맹첩에 나타나는 추사 난 그림의 특징은 서예성의 강조, 그림, 제사, 인장까지 포함한 시, , , 인의 조화, 여백의 중시 등등 있지만 단연 압권은 가늘면서도 대쪽 같은 기개를 품고 있는 마치 철사 같은 난엽입니다.

추사는 가는 난을 통해 청수 하면서도 강인한 기운을 밖으로 뿜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갈무리되는 절제 미를 추구했습니다.

 

수식득격은 이렇게 가늘게 난 잎을 치는 수식난법의 전형적인 교본입니다.

왼쪽 하단에서 시작된 몇 개의 난 잎은 농담을 달리하며 위로 물결치듯 그려져 율동감과 생동감을 살리며 오른쪽으로 길게 그려진 3개의 난 잎은 금방 끊어질 듯 가늘지만 결코 동정 받을 만큼 나약한 잎이 아닙니다. 오히려 곡선이면서도 직선보다 더욱 강한 응축된 기세를 담고 있는 강철 같은 난 잎입니다.

 

맨 위에 비교적 부드럽게 휘어지는 난 잎이 기준선입니다. 그리고 기준 난 왼쪽에서 시작하여 기준 난을 지나 오르다가 갑자기 아래로 꺾이는 난 잎이 봉안선입니다. 겹쳐지는 부분이 봉황의 눈 같다고 만들어진다고 해서 봉안선이라 부릅니다.

 

다음 기준선과 봉안선 사이에서 출발하여 봉안 사이를 뚫고 옆으로 길게 뻗어나간 난이 바로 파봉안 입니다. 봉안의 눈을 뚫고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의 핵심이 바로 파봉안 입니다.

 

끓어질 듯 가늘지만 급히 눌렀다 급히 떼는 즉 급돈급제의 변화를 살짝 주면서 죽 끌고가다 바늘처럼 가늘게 뽑아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추사가 가늘게 치는 법식을 얻었다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끊어질 듯 보이지만 절대 꺾이지 않는 기세를 가는 난 잎에 압축하여 아주 길게 그려내는 것. 바로 이것이 추사 난 법의 요체입니다.

 

어쩌면 쉬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붓을 들어 난을 그려본 사람들은 금방 이해할 것입니다. 난입을 두껍게 그리는 것 보다 가늘게 그리는 게 휠씬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긴 선을 끝까지 기세를 잃지 않고 동일한 필력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왜냐하면 이렇게 난을 치기 위해서는 팔뚝을 바닥에 대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추사의 난 잎에 대해서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님은 팔뚝을 들고 쓰는 현완법과 붓끝을 종이에 수직으로 대는 중봉법을 완전히 몸으로 갖추고 있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난 잎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 가냘픈 선에 응축된 기세를 담아 변화를 주면서도 끝까지 길게 기세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고한 서예적 기반이 없이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수천 년 한자문화권 그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가장 강철 같은 글씨인 추사체를 이룬 오직 추사 김정희 만이 그려낼 수 있는 난 잎인 것입니다.

 

꽃 잎도 담묵으로 경쾌하게 쳐내서 역동적이면서 이는 서예의 획을 그는 요법으로 그려져 있는데 난맹첩의 다른 그림에 비해 다소곳한 모습이 가는 난 잎으로 모이는 시선을 분산 시키고 싶지 않은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올 해 개인적으로 몸무게를 5kg만 줄이겠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원래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이 부족한 스타일이지만 배가 점점 나와 바지가 작아져서 좀 불편해지는 것까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년에 절반 정도 지난 지금 돌아보면 최소한 허리두레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체중이나 욕심도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늘리는 건 관성이고 줄이는 건 관성을 뛰어 넘을만한 목적의식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자신의 습관으로 정착되기까지는 버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추사가 자신의 초, 중년의 기름진 글씨를 제주도의 칼 바람에 날려버려서야 추사체를 완성해 나갈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살아가려는 자는 가늘어져야 합니다. 불필요한 자신의 헛된 욕망들을 조금씩 떼어놓아야 합니다. 금식을 통해서라도 청아한 정신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새로운 그 무엇을 얻을 것이며 삶은 더욱 고결해질 것입니다.

 

금식을 하고 있는 그 친구도 지금은 비롯 여러 가지 난관도 있겠지만 아마 웃으면서 뛰어 넘을 것입니다. 가늘어지는 만큼 길어질 것이며 길어져도 결코 기세가 약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청아하며 고고한 삶을 이루는 방법. 그 방법을 보여주는 그림. 추사의 수식득격입니다.

 

 

2007 . 6 . 29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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