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실엔 편안함이 가득 -설록
차실엔 편안함이 가득
1990년 10월 설녹차 ‘차가정 탐방’
이 달의 차 가정은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구성원이 단촐하다.
1987년에 결혼한 이형재(李亨宰)씨와 정지인(鄭智仁)씨 단 두 사람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차를 마시기 시작한 댁이 아니고,
두 분이 차에 익숙해지고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도 여태까지와 다르다면 다른 점.
또, 어느 가정이 이 댁처럼 손님을 많이 치를까.
부인 정씨가 올해 달력에 꼼꼼히 적어놓은 것을 보자.
1월에 42명, 2월에 51명, 3월에 60명, 4월에 33명, 5월에 73명, 6월에 66명,
7월에 53명, 8월에 59명. 정확하게 437분의 손님이 이 댁을 찾았다.
그것도 내외가 한 달에 반 정도는 집을 비웠음에도.
“그저 편안하게 대하려 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분이 이 방엘 오셔서
편하다고 말씀하시면 저도 좋지요.”
이 댁에서 마련한 방명록(집에 방명록이 있다는 것도 과문한 탓인지 특이해 보였다.)
벌써 3권 째이다. 첫권부터 쭉 들춰보니 찾아오신 분들의 면면이 눈에 선하다.
지기(知己)들은 물론이고 스님이며 도사, 교수, 예술가, 문인등
다양한 분들이다.
이들이 방명록에 써놓은(혹은 술에 취해 글씨를 그려놓은)것들을 보면
주인과 손님이 빚어낸 이 댁, 이 차실의 분위기가 그대로 눈에 잡힌다.
5평 남짓 될까 싶은 이 댁의 차실 한 벽엔 차와 다기가 그득하고,
구석엔 20여개의 난분(蘭盆)이 그윽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인 자리 뒷벽엔 시원한 글씨가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손님들의
잠자리로도 이용되는 이 방에서 그대로 누워 잠들다 일어나면
비록 순간일지라도 신선이 된 듯 한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이형재씨는 조각이 전공이다.
넉넉한 체구에 늘 입고 있는 한복이 잘 어울린다.
1988년부터 다른 옷을 일절 입지 않고 한복만 고집하는 낭군을 위해
부인은 일상복 겸 산에 다닐 때 편하게 개량한 한복까지 마련했다.
그리고 눈부시게 흰 고무신이 인상 깊다.
“차는 전부터 마시고 싶었는데 이곳 춘천에서는 어렵더군요. 다만 전시회라든지
일이 있어 한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가면 인사동에 들러 자연스레 마시게 됐지요.
차를 알고 싶어 차에 관한 문헌을 모으며 공부하고, 차를 경험하고 선(禪)과 다도를
체험하며 몰입하게 되었지요. 그때가 1983년~ 84년인데 전시회를 서울서 열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차의 첫 맛에 반했다는 것이 이씨의 회고담이다.
부인 정지인씨도 1983년에 ‘반야로 차도가’ 채원화 선생님으로부터 차를 배웠다 한다.
경북 성주가 고향. 정씨는 한국화, 더 정확하게는 문인화를 그리는 분이다.
이 댁에 들어서서 정면으로 맞닥드리는 곳에 작품이 걸려 있다.
부부가 함께 전시회를 가졌었느냐는 질문에도 하도 천연덕스럽게
“가져야지요. 환갑때 쯤 해서요. 부부전은 아니더라도 여러 그룹전에는 같이
출품하고 있습니다.”
이 글 첫머리에 이 댁의 구성원이 단촐하다고 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한 것은 손님이 많은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보단 예삐와 미미, 똑똑이 등 다른 식구들이 있어서였다.
이들은 이 댁에서 자식처럼 키우는 개들이며 미미와 똑똑이는 예삐의 소생이다.
차 이야길 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예삐도 차를 잘 먹는다.
우려낸 차는 물론 찻잎도 잘 먹는다.
이날 나눈 대화의 30%정도는 얘네 들, 특히 예삐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예삐의 영악스러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징어를 주면 처음엔 몸통이 아니면 안 먹어요. 머리나 다리는 뒀다가 먹지요. 또,
다리는 끝을 잘라내고 먹구요.”
예삐에게 푸대접 받기 싫으면 이 댁에는 빈손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영악함은 참으로 친자식 못지않게 정성을 기울이는 이 댁 내외이겠지만 계속된 이야기가
참으로 신기했다. ‘지네들이 개가 아닌 줄 아나봐요’ 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두 내외는 춘천 시내에 화실을 경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살림을 꾸려 가고있다. 그 많은
손님을 치르다보면 넉넉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차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알지 못할 뿌듯함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방명록에 그 느낌을 끄적이고 일어섰다.
무슨 의미처럼 하늘의 별이 초롱했다. <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