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개인전 1989.2
生長이 보여주는 萬靈의 始原
저널리스트, 소설가 이 기 윤
(1989년 2월 15일)
時空을 초월하는 세계는 언제나 불가측의 미래 속에 우리를 던진다. 그러나 ‘神이 오신다’ ‘王 이 죽는다’ 와 같은 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거대한 상황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탄생을 예시하는 영감으로 우리 주변을 아른거리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한 전시장에서 靑年作家를 만난다. 금세기 우뚝한 역사가였던 토인비의 견해와도 같이, 새 문명이 번데기에서 태어난다고 믿고 있는 그는, 일종의 꿈틀거림을 새로운 예술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라 시도하는 것은- 새로운 탄생을 추구해본 예술인이라면 첫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자기 미술의 구제의 한 방편으로서의 흔해빠진 ‘始原에서의 통합’일 테지만, 사뭇 정리된 분류를 함께 모색함으로서 이제껏 표면에 등장하지 못했던 배후의 체계를 세우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것에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혼미와 고뇌를 과감히 바닥에 깔아버리는 작업 속에서 일차적으로 그가 추출해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잠재하는 ‘간절한 애정과도 같은 것들이다. 이를테면 70세 노파와 2살 아기의 포옹에 감추어진 68년이라는 긴 공간을 -분명히 있는 것이고, 있어야 하는 공간이지만 아무도, 이해 못하는 공간을 -그의 심미안은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작가 이형재의 작품에서 풍기는 그러한 느낌들은,-미리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럼풋 하나마-위대한, 또 하나의 탄생이 미구에 우리앞에 펼쳐질 것을 예견케하는 징후로 여겨진다.
美術.- 나아가 예술을 포함하는 모든 문명은, 사실상 끊임없이 탄생과 성장 번영 혼란 그리고 쇠뇌의 원을 크게든, 작게든 그려왔다. 문명의 발생과 해체는 언제나 미술이 새로운 영역 제공을 필연적으로 동반했다.
그러나 그렇게 병행해온 두 줄기 빛은, 그 동경하는 이상에서는 상반되는 개념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리얼리즘을 추구해온 일단의 소수 집단을 제외하면, 대개는 고통속에서는 환상적인 유토피아를, 낭만주의 물결 안에서는 이미 사라져간 영웅과 전쟁과 우상을 그리워하는 아이러니를 서슴치 않았다.
이와같은 모순은 역사적으로 다원적 집합체 속에 예술인들이 갖고 있던 지위와는 무관한 문제였다. 비록 하층계급에 속해 있었다고는 하나 그들에게 주어졌던 찬사와 명예는 가히 영웅이 부럽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런 현상적인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본질적인 고뇌가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외출만으로 창작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데서 오는, 숙명적인 고독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일단의 미술가들에게 막대한 富와 여가를 새로운 창작의 준비에 분배하면 된다고- 그렇게 할것이라고, 역설했지만, 그로인해 현대예술을 물량적 행복의 증대에만 골몰한 나머지 그 영혼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미술은 어느듯 혼란과 쇠퇴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구원의 빛이 등장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미궁속에 그들 모두는 버려진 것이다.
이형재의 미술은, 어느날 문득 우리들이 동경하는 이상의 세계를 몰고 나타난 격이다.
오늘날의 미술이 미래에 대한 조급한 공포에서 심리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해결의 열쇠는 마땅히 原點에서 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추측을 현실에 구체화한 실체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점에서의 재출발을 시도하는 작가는 -최소한 시도하는 입장의 작가는 이 시대에도 수없이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이형재의 작품처럼, 생명 활동의 엄청나고 매혹적인 조류에 대해 포괄적인 견해를 담고있는 꿈틀거림은 일찍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순한 반짝거림이 아닌, 표현그대로 ‘꿈틀거림’은 개인의 탁월한 창작이기보다 시대적 탄생물이 되어 우리의 영감을 자극하며 크로즈엎 되어 오는 것이다.
그는 일련의 작품을 통해 만물의 탄생과 해체를 설명하고 있고, 神이 아닌, 神의 배후에도 존재가 있음을 제시한다. 그는 주저없이, 그에게서 태어나 느린 걸음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상상을 압도하는 이 작품들에 ‘생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萬靈이 춤추는 광란의 폭풍을 거짓말처럼 잠재운 조용한 새벽처럼, 그의 生長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듬뿍 뿌려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작업으로, 그 당당한 알몸을 환한 대낮에 드러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을 묻고 있을 것이다.
生長은 예술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한 도전 내지는 응전의 성격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기왕에 지배적이던 두가지 이론-즉, 예술은 인간에 의해 창조된다는 인간론과 자연환경이 예술을 만든다는 환경론을 모두 부인하는 것이 주목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生長은 차라리 그런 호조건설 보다는, 환경이 나쁜데서 예술에 대한 도전이 있어야 그것에 대한 응전을 유발하여 예술이 탄생되는 것 이라는 악조건설을 택하고 있다.
‘간절한 애정’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야말로 바람직한 도전이요, 부단한 연쇄작용이 연상되는 응전의 적절한 구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창조 행위에는 정적인 관조가 아닌 애정의 실천이 절대적요소로 전제되고 있음을 그는, 자신 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우리가, 애정이 있는 도전과 그에 적절한 응전만이 인류가 예술을 탄생시키고 발전시켜가는 비밀을 설명해 주는 진정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이형재의 미술을 주의 깊게 기억하고 지켜볼 충분한 이유는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형재는 그가 오늘의 전시에서 증거 하듯 끊임없는 호기심 때문에 평생동안 미술에 종사하게끔 될 것이다. 제3의 전개 조건에 구애 없이 그는 이미 자신의 경험에서 그것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자신의 생장과정이 그에게서 탄생되어 꿈틀거리는 예술의 그것과 동일한 리듬선상에 있음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측컨대 그의 예술관은, 아마도 머지않아 신학으로 변모하는 황홀한 허물갈이 변신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르면 작가 이형재는 오늘, 우리와의 만남을 ‘예술에의 사랑’으로 훌륭하게 승화시켜줄 것이다. 그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믿는다면, 作家 이형재에 대한 우리의 아낌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보다는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