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관련 자료

[스크랩] 푸어차의 종류 - 보이차 (12)...(각종 보이차의 사진과 설명)

차화로 2005. 2. 15. 19:12




동흥후기원차(同興后期圓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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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흥호 차창의 원래 이름은 동순상(同順祥)호였으며 중신행(中信行)이라고도 하였다. 1733년 이무진에서 창업하였으며 1920년 전후(民國10年前後)에 동경호처럼 이무대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차공장이었다. 이때 생산량은 년(年) 약 500담으로 대형 차공장 대열에 끼였다. 현재 알려진 동흥호의 자료는 일부분이고 푸어차계의 어느 노(老)선배의 구전에 의하여 알려진 것이고 생산된 차는 비교적 훌륭하다. 저자가 소유하고 있는 두 종의 동흥호 차는 모두 원병차(圓餠茶)로 일종(一種)은 1920∼1933년 사이 제조된 것으로 내가 구분하여 "조기동흥원차(早期同興)"라 하였고 1933년∼1948년 사이 산품을 구분키 위하여 후기(后期)동흥호라 칭하였다.



차잎은 모두 의방차산의 만송정상차원(曼松頂上茶圓)의 찻잎으로 품질은 보통 이상으로 좋은 소엽 차종이다. 동흥원차 내비는 "本號專辨易武倚邦 巒松頂上白尖嫩芽"라 표명되어 있으나 본인이 보건대 의방차산의 차품인 것만은 확실하나 만송산정상차품인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 동흥원차는 2종으로 제조시기가 약 20년 간격으로 두 차의 차성은 같으며 동흥호 차공장의 품질관리의 철저함을 발견할 수 있다.


만송채차잎(曼松寨茶葉)은 의방차의 최고급으로 동흥호차는 주로 만송차잎을 원료로 하였다. 의방차산은 소엽 푸어차 위주로 하였고, 소엽차수(小葉茶樹)는 그 생장이 서쌍반나 지역의 소엽 차종으로 운남성 남부에 여러 차나무의 종류가 함께 섞여 자란 특성을 잘 지니고 있는 "푸어차성(茶性)"이라 한다.

의방차구의 소엽 차종과 대엽 차종은 공통 푸어차성 이외에 독특한 것은 소엽의 청향과 대엽의 짙고 두터운 맛이 고루 갖추고 있어 차를 우려 마실 때 아주 적합한 신선미가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여아푸어공차(女兒普 貢茶)는 자희태후(慈嬉太后)가 청엄차성(靑茶性)의 맛을 즐겨 은총을 내린 선택된 공차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의방의 푸어차는 어리면서도 노향(老香), 햇차이면서도 묵은 맛이 나는 가장 신선한 음료이기 때문이다.(소장중임)

 




동창호(同昌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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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는 1869년 동치(同治) 7년 창설하여 청나라말 민국초에 휴업하였다. 1920년경에 많은 차공장 가게들이 이무차구에 창업 또는 재 개업할 무렵 동창호도 주관보(朱館寶)에 의해 재 창업 이무대가에서 이무정산 푸어차를 계속 생산하였다. 1929년도 푸어차 연 생산량은 400여담으로 차공장 규모도 상당히 컸다. 애석하게도 그때 만든 차를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차 공장, 가게 명호와 간단한 문자자료 뿐. 1930년대 동창호의 주인이 황문흥(黃文興)으로 바뀌어 영업을 하였고 초기에는 차의 내비의 낙관을 "주인황문흥근백(主人黃文興謹白)"이라 사용하다가 1949년경 동창호(同昌號)를 동창황기(同昌黃記)라 개칭하고 주인명 대신 황금당(黃錦堂)이라 쓰고 내비 낙관은 "동창황기주인근백(同昌黃記主人謹白)"이라 그림과 같이 바꾸었다.







< 동차원차 내비 >< 동창원차 차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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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는 3종으로 ①동창원차(同昌圓茶), 내비는 "주인황문흥근백(主人黃文興謹白)" ②동창황기남원차, 내비는 "동창황기주인근백(同昌黃記主人謹白)" ③동창황기홍원, 내비는 "주인황금당근식(主人黃錦堂槿識)"등이다. 동창원차와 동창황기남원차는 외관이 거의 같으며 색택, 유광(油光)도 같다.


동창황기남원차의 줄기, 앞면, 차잎 등은 동창원차와 다르며 내비는 남(藍)자로 동창원차와 동창황기남원차는 같다. 동창황기홍원은 원차절병의 한 양식으로 단단하게 눌러 만든 것으로 경창원차의 미관을 많이 닮았고, 3, 4, 5등급의 차잎을 선별하여 만들었고 병면은 율홍색(栗紅色) 차잎은 어리고 가늘며 동경노호원차의 한 양식으로 유광(油光,기름기)은 비교적 엷고 내비는 홍색으로 크기와 형식은 동창황기남원차와 같다.





< 동창 황기남원차 내비 >

매통 속에 그림처럼 내표가 1장씩 들어있다. 이상 3종의 차를 엄밀 감정해 본 결과 이무산 푸어차의 기세는 없고 의방차구의 품격에 가깝다.

차향은 의방차산의 특색인 청향이고 이들 차들은 50여년의 진운으로 같은 시기의 차가 지닌 신선함이 있다. 동차황기홍원차는 차의 외관이 결실하고 진화상태, 차운(茶韻)등으로 보아 1970년대 산품의 한 양식이다.

유경험자들이 흔히 말하는 변경 푸어차잎은 수성이 엷고 유순하며 차의 기가 약하다. 이런 것들은 이무정산의 푸어차 특색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고 동창황기홍원차의 내표에 "이차여중부동(此茶輿衆不同)"이라는 표현에 제현들은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장중)




< 동창 황기남원차 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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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황기남원차 내비>




<동창 황기남원차 차통>

 



보경원차(普慶圓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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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푸어차의 포장이며 더욱이 외관미(外觀美)가 뛰어난 푸어차의 대표적인 차 모양으로 모든 것이 전통적 방법으로 압제한 형태이며 차창, 상호, 내비가 묻혀 있고, 품질, 상호 종류 등이 잘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자기 상표를 확실히 알리고 가짜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매통에 큰 상호 내표가 덮여 있다.

극히 일부 수량에는 내표가 있고 내비는 없는 것이 있다. 이는 모조품을 만드는데 용이한 것 같이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방편으로 생각되며, 내가 이차의 두 종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내비가 없고 내표만 있는 보경원차(普慶圓茶)이고, 다른 하나는 부서져 산차(散茶)처럼되어 그 모양 형태 규격 등을 알 수 없다.

내표는 그림과 같이 내장되어 있고, 그 내용은 중화민국 2년(1913년) 이 내표를 개용하고 차공장은 이무진에 있고 이무정산 차잎으로 만든 차라고 설명되어 있다.




5병(餠)의 보경원차를 처음 발견당시 시음해 본 결과 차성이 모두 의방차구 차잎으로서 이무차구의 차맛을 발견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이 내표는 그 소지한 상인이 필히 5병을 고가로 판매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며 차의 품질을 보건대 청향, 진운, 수성 및 생진 등 5방면의 표현 등은 그렇지가 않았다.

기타 의방차품에서처럼 같은 느낌의 차이다. 이 5병의 차가 보경호 차공장 산품인지 어쩐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고 다만 한 사람의 자료를 획득한 것뿐이다.





정흥호(鼎興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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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이전 맹해에는 널리 알려진 차공장이 여럿 있었다. 이들 공장의 생산품 중에는 품질이 고르지 못했고, 이들 차들은 대부분 서강 신강 서장 혹은 운남성 소수 민족에게 판매되고 이들은 차에 생강, 계피, 양유, 후추 등 여러 가지 다른 재료들을 혼합하여 마시기도 하고 갈고 삶아서 먹기도 했다. 차 잎이 농엄순후(濃 純厚)하여 적당한 방법으로 먹었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고급품은 수요가 적어 소량 생산되었고, 염가로 판매할 수 있는 보통 푸어차가 상당히 많았다. 한편으로 적은 수량이나 고급품을 선호하는 무리도 자연히 이루어지게 되어 푸어차 재조창은 이상의 요구에 부응코저 2개 부류로 나누어 생산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보통 품의 푸어차로는 송빙호, 홍태창호, 동창호 등으로 비교적 차 생산이 많은 공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고급 차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차공장은 동경호, 경창호, 정흥호 등 제조창으로 나누어졌다. 이와 같은 각 차 제조창은 수평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특별히 고급을 찾는 고급 차 생산부류와 보통 차 부류로 나뉘어졌으며 어떤 고급 차 공장은 차등(差等)으로 생산하여 차등품질을 같은 상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푸어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표와 상호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맛보고 비교하여 방심하지 말고 현명하게 선택하기 바란다. 정흥호 차창은 고급 푸어차를 위주로 생산하는 공장으로 현재 그 제품은 많지 않다.

본인이 원차 3종과 긴차 1종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중 1종 원차는 품질이 보통이고 나머지 2종과 긴차는 차등품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것은 그 품질의 차이가 많다. 좋은 것은 대부분 수장가 수중에 있고 시중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내비는 그림과 같이 문자 내용은 같고 안색은 다르다.

 




정흥호(鼎興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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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홍자, 둘째 남색자, 셋째 자색자. 첫째 홍자, 둘째 남색자는 품질이 같고 진기(陳期)도 60년 전후로 선기적(先期的) 푸어차로 우량품이며 자자(紫字) 내비차는 비교적 품질이 홍남자(紅藍字)에 비해 낮고 차잎이 많으며 단엽으로 윤기가 적고 잎이 세고 차 표면이 거칠고 두텁다.

홍자(紅字)와 남자(藍字)차는 가벼운 숙차 차청으로 유향야성적장향(油香野性的樟香)으로 푸어차 중에서 가장 농후한 차향이다. 이는 맹해 주위 소엽종 차원의차와 유락산 남산록 일대의 소엽차청이다. 자자(紫字)차품은 홍남자(紅藍字)에 비해 차성과 품미(品味)가 훨씬 못 미친다. 정흥원차의 미도는 담박하고 아주 약한 신맛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방차구의 차성을 지니고 있을 뿐 이무차구와 맹해의 노차수(老茶樹)의 휘후농엄(揮厚濃 )한 맛은 없다.

목에서부터 순하고 매끄러운 단맛이 돌고 진하게 많이 마시면 단맛이 돈 뒤에 식욕이 느껴진다.(소장중임)












긴차(緊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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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대긴차(末代緊茶)
(한 개의 긴차를 가지고 운남에 가다)

⑴전언(前言)
2000여년 전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지부(子虛之賦) 중에 자허가 오유선생 집에 가서 차를 마셨다 하는 대체적인 설이 있다. 타( )는 타(中國茶史)와 같이 썼고 당시 차를 타()라 불렀다. 고증하기는 어려우나 그 근거로 시경정풍(時經鄭風)편에 유여여차(有女如茶)라는 말과 유관하다. 이 뜻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 것은 차가 있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으로 여(女)와 차(茶)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타()는 차잎을 비비고 비벼 차 덩어리를 만드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아름다울 타) 차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로 "하관풍, 타강수(下關風, 江水)"란 말은 하관의 바람으로 차를 말리고 타강의 물로 차를 달여 미시니 그 맛과 향이 순하고 감미로와 그 이름을 "타차(茶)"라 한다고 하였다. 타차의 득명(得名)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타단(團)형의 차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것만은 확실하다.




운남 푸어차 제조과정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차 만드는 방법을 계승하여 타단차(團茶)를 만드는 독특한 품격을 오늘에까지 유지하고 있다. 오래일수록 향이 아름답고 찻잔의 풍미가 우러나는 이 차는 오늘날의 문화시대에 담아(淡雅)한 맛과 복고적인 감정을 연구하는데 일고의 깊은 정을 느끼게 하며 21세기에 복고적인 정신을 일으키게 하는 획기적인 차 중의 차라! 푸어차의 모양은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사발모양의 움푹 들어가게 만든 차를 타차(茶)라 하고 버섯모양의 차를 긴차(緊茶)라 한다.

현재 운남푸어차창은 타차 생산이 충분하고 시중에서도 충분하다. 1967년 운남맹해차창에서는 긴차용 차잎을 전차( 茶)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심장형 또는 버섯형 긴차(緊茶)는 포장과 운반시의 불편 분실등 문제에 따라 전차(茶)로 만들게 되었다. 그 중 일부 남은 오래된 긴차는 이미 수장가의 최고 수집품이 되었다. 80년대 초 운남하관차창에서 전문적으로 서장 종교 지도자 반선을 위한 반선차를 긴차 대신에 이미 만들기 시작앴다.

이 차는 신차수(新茶樹)를 원료로 하여 "보염패(寶焰牌)"라는 상표로 내비를 넣어 서장(西藏)지역의 절(佛)에서 사용할 양을 제조하였다. 약 2∼3년 전 대만돈 1만NT$를 주고 오래된 긴차 1개를 산 어느 중의사(中醫師)가 즐거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오래된 긴차가 순수한 맛 외에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담을 삭이고 암을 치료하는 고 가치의 치료용으로 사용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시중에 발견되는 긴차는 1만NT$로 거래되고 있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타이페이의 어느 차 가게에서는 이 차에 대한 소문이 구구해, 그 수량이 얼마인지, 품질이 어떤지 또는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 억측이 구구하기도 하다. 이 긴차를 관찰해 보건대 충분히 경하할 만하다. 본인이 이 차의 이름을 말대긴차(末代緊茶)로 이름을 붙인 것은 진귀(珍貴)함을 표시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이 말대긴차를 추측하컨데 60년 이상된 진 귀품임이 확실하고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긴차이다. 이 긴차에는 생차와 숙차의 2종으로 차령은 장구하고 이미 자연 숙성되어 부서지고 퍼석하여 산차처럼 부스러진다. 이 긴차는 원료, 제작, 저장 등의 좋고 나쁜 것을 말할 필요도 없고 푸어차계 차의 수집에나 수장품으로 진품이다. 이 긴차를 우연히 시장에서 몇 개를 볼 수 있었으며 오래된 것과 신차 모두가 수장가들로부터 유출된 것이었다. 신차는 80년대 서장 반선(班禪)의 전용품으로 하관차창서 생산 이미 소모되었고 근래 소량 긴차 생산품도 모두 소모된 상태이다.


⑵맹경긴차(猛景緊茶)

말대긴차 중 생차생산량은 많지 않다. 이차는 맹롱(猛弄)지방의 맹경(猛景)차창의 제품으로 맹롱은 현재 운남성 푸어진(鎭) 동북방의 맹롱촌장(猛弄村莊)이다. 이 지역에서 푸어차의 생산이 왕성하였고 맹고(猛雇)봉산(鳳山)은 운남성 중부의 차구로 생산이 활발하였다. 이 생긴차(生緊茶)는 늙은 차나무의 차잎으로 만들었고 볕에 말리고 건창으로 제조하여 장구한 세월 건조하게 보관되어 어떤 것은 색이 희게 바래지기도 했다.

손에 잡으면 아주 가볍게 느껴져 공중에 붕 뜨는 감각이 있고 한 개의 맹견긴차의 무게는 약 200g정도이고 차를 차호에 넣고 물을 부으면 차잎이 자연 팽창하여 차호에 가득차고 아울러 신선한 율홍색으로 환원되고 탄력성이 활발하게 나타나 60여년 저쪽의 세월의 생명력과 그 활력이 살아난다. 오래된 표면 주름살 모양은 두꺼비 등가죽 모양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푸어차 늙은 차나무의 차잎으로 만든 거칠고 억세고 뻣뻣한 잎이 가늘고 얇다. 맹경 생긴차(生緊茶)의 품미(品味)는 순하고 부드럽고 엷은 장향이 나고 오랜 세월동안 저장으로 잡미가 조금 감염되어 있다. 한두 번 끊여낸 후부터는 자연적인 장향의 청순미가 감돈다.


차탕은 율홍색이고 찻물이 입안에 느낄 때 수성이 부드럽고 쓰고 떫은맛이 전혀 없고 순한 가운데 맑고 단맛이 나며 혀끝과 인후에서 단 느낌이 돌아 나온다. 은은한 장향은 코를 거쳐 양뺨과 혀까지 미미하게 진동시킨다. 이런 훌륭한 중에도 미진한 것은 너무 늙은 찻잎을 사용하여 찻물이 비교적 빨리 빠지는 흠이 있다. 10번 이내 물이 엷어진다. 첫번째 찻물은 무미(無味)의 미와 단침이 생기는 노차수 특유의 좋은 차성의 차이다. 근래 시중에서 발견된 맹경원차(내비가 있는)를 감정해 본 결과 10여년 안팎의 차로서 습창, 매변, 가속 진화시킨 것으로 신차수관목(新茶樹灌木)잎으로 경미하게 발효압제 한 것으로 모방품으로 밖에 볼 수 없다.(소장중임)


⑷후기

말대긴차가 이미 월진월향(越陳越香)의 푸어차 특색을 인증했고 마셔보고 접해보아 직접적인 중화문화의 역사가 우리들의 육체 내에 융화되어 있다. 생긴차(生緊茶)를 황산(黃山)의 강한 양기의 기세라면 숙차긴차(熟茶緊茶)는 계림산(桂林山)의 음적인 부드러운 미라 할 수 있다. 운남성 서쌍반나 자치주 사모(思茅)에서 제 1회 국제푸어차연구회(國際普 茶硏究會)를 거행할 때 본인의 발표논문이 격찬을 받기전 전세계 푸어차 애호가 대표대회에 나의 논문과 1개의 말대긴차(末代緊茶)를 운남으로 보냈다.

중국 푸어차 국제학술연구회가 1993년 4월 4일 운남성 사모현에서 미국, 일본, 한국, 프랑스,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지구와 중국본토 등 십여 개의 국가에서 180여명이 참가 중국 푸어차 전문학자 연구 토론상 수십편의 유관토론 푸어차 및 중국 고 차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논문 발표

(중국고차목 논문발표;中國古茶木 論文發表)에 본인이 재출한 "월진월향론(越陳越香論)의 문장에 대하여 대회에 보고 설명하였다. 그때 말대긴차(末代緊茶)에 대한 전시보고회장에대하여 관심이 특히 많아 장내 인원 모두가 주시한 가운데 신문등 언론매체 모두가 호응하고 격려하고 촬영해주었다.

제 2일 당시 사모신문(思茅新聞)보도에 "대만사범대학 등시해 선생이 소지한 1929년산 푸어수장품(收藏品)", "등교수 대회상선독논문소개장품(鄧敎授 大會上宣論文紹介藏品)"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회 중 미국 대표 양단계(楊丹桂)여사는 본래 이곳 운남성 산리족 후예로서 전 가족이 모두 푸어차를 만들고 팔며 매일 푸어차와 접촉하였었다.

부친은 미얀마, 인도 등 인근 나라로까지 푸어차를 생산코자 1949년 전 가족을 인도로 이민한 후 다시 미국으로 이민 현재까지 미국에 거주중이다. 현재 양 여사는 고령으로 퇴직하고 이번 푸어차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조기 푸어차 운송, 수출로 등 옛 차길과(古茶路)도구 등 푸어차의 역사적 가치를 영문으로 제출하여 찬사를 받았다.

그때 본인이 "월진월향(越陳越香)"의 보고를 마치자 양 여사가 즉각 내게로 와서 말대긴차(末代緊茶)를 보고 손으로 만져 보며 관찰하면서 유난히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이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늘 보고 때때로 쓰다듬던 긴차, 내가 그때부터 기념적으로 2개를 보관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보니 가히 기념적이라 먼 훗날 잃어버릴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보게되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고 내 생활이 푸어차와 함께 오늘에 이른 정경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하자

양 여사가 그 말대긴차를 사랑함이 지극하고 어린 미얀마 시절을 회상하는 표정이 역력하므로 회의가 끝나기 전에 본인이 본 대회에 대하여 "이 말대긴차를 맞아 내 스스로 맛보았고, 진품임이 공인되었고, 더욱이 멀리서 오신 양 여사께서 이 말대긴차에 어릴적 추억이 깃 든 듯 하여 이 차를 양 여사에게 드리는 것이 더욱 기념적이고 뜻 있는 일일 것 같으니 드리겠다."고 하자

갑자기 장내에 박수가 터져 나와 양 여사께서는 갑자기 당한 일에 어쩔 줄 몰라"고맙습니다"만 연발하였다. 말대긴차가 역사적으로 진품임이 증명되었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소장중임)








< 맹경긴차 내비 >




< 말대긴차 한조 >




< 국제 푸어차 학술회에서 저자가 미국 대표 양여사에게 말대긴차 1개를 정증하는 모습 >

 

 

 

출처 : 푸어차의 종류 - 보이차 (12)...(각종 보이차의 사진과 설명)
글쓴이 : 아란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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