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연산의 보경사.
신라의 고찰 보경사.
소재지: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산101-1 보경사
602년(신라 진평왕 25년)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지명법사는 왕에게 명당을 찾아서 진나라에서 유학할때 어떤 도인에게 받은 팔면 보경을 묻고
구위에 불당을 세우면 외국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 하리라 하였다고 해서 왕은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내연산아래 있는 큰 연모속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한 후에 보겨아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고려 고종때 원진 국사를 비롯하여 많은 고승들이 중창하여 현대에 이른다.
경내의 유적
원진 국사비.
보물제 252호 로 지정된 원진국사비는 1224년고려 고종11년에 건립 했다.
원진국사(1187~1221)의 탑비이며 탑의 크기는 높이가 183cm,너비104cm,두께 17cm이다.
용모양의 비 머리가 없고 비석의 위쪽 양끝은 귀접이 한 것과 둘레독특한 당초문 문양의 장식을 쓴것이
특징이다.
비문은 해서체로 써있는데, 이공노가 짓었으며 글씨는 김효인이 썼다.
원진국사 부도(보물 제 430호)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사진-문화재청에서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이다.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기단부(基壇部)의 아래·중간·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다.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
금당탑(경북 유형문화제 제203호).
고려 현종 14년(1023)에 건립 되었으며 도인,각인,문원 고승이 건립하였다.
1976년에 보수 하면서 기단과 4,5층지붕돌이 추가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잘맞지 않는 느낌이 난다.
적광전(경북 유형문화재 제254호).
신라26대 진평왕 25년(603)에 창건 했으며 1214년 원진 국사가 중창 했으며
그 후 수차래 중건,중수 되었다.
건축양식은 정면3칸,측면 2칸의 5량가 다포집으로 조선 중기의 사찰건축의 특징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보경사 건물중에 제일 오래된 건물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좌보처 문수 보살,우보처 보현보살을 모셨다.
대웅전(문화재 자료 제231호).
연대 미상으로 조선 숙종3년(1677)에 중수 되었고 그후에 몇차례 보수 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2년에 대대적인 중수에 의한 양식적 특징이 주로 남아 있다.
정면3칸,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앞의 칸은 통칸으로 처리 되었고 바닥엔 마루를 깔았다.
팔상전,
이조 숙종3년(1678)에 지총대사가 화주하여 건립했다.
팔상전은 석가 세존의 일대 생애를 시기적으로 여덟가지로 나누어 팔폭화면으로 그려 모신 전각이다.
그외에도 산신각,명부전,원진각,영산각등이 있다.
원조루.
일명 종각,이조 숙종3년(1678)에 건립 되었으며 범종,법고,목어,운판이 안치되어 있으며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경관 중에 볼거리는 내연산,협암,병풍바위,상생포,기화대,기화암,보현포,칠성포,삼보포,잠룡포,선일대,무풍포,관음포,관음굴,탱자나무2수(도지정 기념물11호,400년생),느티나무(300년생)등이 있으며,
주변의 암자는 청련암(동암),서운암,보현암,문수암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