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잊혀진 그곳 회암사 그리고 쌍사자석등

차화로 2006. 11. 14. 18:15
 

잊혀진다는것..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처럼 매섭고, 서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잊혀져 버린 그 곳. 한때 조선왕실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가 수없이 찾았던 그 곳. 무학대사의 넋이 있는 그곳 회암사.. 그리고 내가 수없이 갔다온 그 곳은 이제 그 터만 있는 회암사지... 숙제 때문에 가는 길이었지만 9월 부터 11월까지 6차례 갔다온 그곳은 갈 때마다 다른 색의 모습으로 힘없이 떠난 길에 힘을 주는 장소였다.

(회암사로 가는 마지막 길은 너무나.. 힘들다. 차들도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회암사지 라고 해야 하지만 그 예전엔 태조 이성계가 다녔던 곳. 태종 이방원 조차 아버지가 다녔던 그곳에 노비와 땅을 주고 아꼈던 그곳.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조선왕실의 원찰. 문정왕후가 마지막 불교의 부흥을 외쳤던 그곳. 그곳은 바로 회암사다. 역사스폐셜에서도 나왔던 회암사. 하지만 이미 그곳은 다 불타버리고 그 터만 있다가 최근이라면 최근에야 발굴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그리고 회암사가 있는 천보산 위에 현재 다시 회암사가 있고 그 옆에는 삼부도와 부도 앞에 현재에도 별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석등이 있다.


양주시 회암사에 갈려면 참..먼 길을 가야한다. 차가 없는 내가 갈려면  서울역에 가서 느릿느릿 그리고 사람도 엄청나게 많은 1호선을 1시간이나 타고 의정부북부역에서 건너 다시 30번 버스를 타고 율정 삼거리에서 내린다.(원래 더 가서 김삿갓교까지 가는데 최근에 갔더니 노선이 바뀌었다고 거기서 내려준다.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가지 않았으면..) 거기서 78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던가 아니면 걸어서 30~40분 정도가야 회암사지도 보고 천보산 자락의 현재 다시 만든 회암사와 삼부도와 석등을 볼 수 있다.  

 

 


천보산 자락의 현재 회암사는 격한 오르막길을 쉼없이 올라가야 한다. 산을 많이 타는 사람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테지만 나 같은 사람은 숨을 헉헉 거리며 올라간다. 그리면 그 옆에 개울에서 흐르는 물과 함께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옆에 개울은 마를때도 있지만 내가 갈때는 비온뒤 였어서 그런지 가면 늘 물이 흐르는데 올라가다가 중간에 쉬고 거기서 손도 담그고 하면서 혼자 자연을 느끼다가 다시 올라간다. 그러면 어느새 회암사다. 앞에 요사채(스님의 주거공간)가 있고 다시 그 앞에는 숨을 헐떡이는 나 같은 걸어다니는 여행자를 위해 물을 마시는 공간이 있는데 참 그 맛이 꿀맛이다. 다시 그 옆에 삼부도와 석등이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우선 그 곳에 가기전 엔 견보살(상당히 멋지게 생긴 개)님에게 인사한번 해야하고 걸으면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11월에 갔을때다. 너무 멋져서 사진 찍으러 온 사람을 보았다.)


내가 조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꾸리자면 현재 보물 389호인 회암사지 쌍사자 석등 이있다. 그래서 그런지 위에 지공선사부도, 나옹선사 부도 보다는 쌍사자 석등이 모시고 있는 무학대사 부도를 더 많이 보게된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두 개의 부도 보다는 너무나 화려하고 과연 이것이 스님의 부도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치창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무학대사.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조차 함부로 하지 않았던 분. 그 무학대사 부도는 무학대사가 열반에 들기 전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부단히도 도움을 주는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준 하나의 선물이 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앞에 바로 쌍사자 석등이 있다.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석등 이라고 하면 단순히 볼 것이 아니다. 왜냐면 전세계.. 특히 불교의 기원지인 인도만을 따져봐도 석등은 몇기 없고 우리나라 처럼 석등이 많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석등' 이라는 책에서만 봐도 우리나라에 석등은 무려 200여기가 있고 쌍사자 석등은 몇 없다. 사자는 불교에서 불법의 수호자로 여겨졌는데 현재 국보 5호인 법주사 쌍사자 석등처럼 벌떡 서서 있는 석등이 있는 반면 회암사에서 볼 수 있는 석등처럼 사자가 앉아서 있는 석등, 누워있는 사자 석등도 있고 석등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회암사의 쌍사자 석등은 그 곳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원래 그 부도와 석등이 있는 곳은 작은 암자 였다고 한다.(큰 사찰은 원래 몇 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정왕후 때 보우대사가 회암사 주지로 오고 문정왕후가 죽으면서 조선은 유교국가로 발돋음 하기위해 실록에 보면 선조때 부터는 명종과 선조 사이 얼마 안되는 국가의 원찰이었던 회암사는 폐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삼부도와 석등은 다치지 않았다. 폐사 된 후 스님들이 모여서 그곳에 암자를 좀 더 크게 해서 그 석등과 부도를 지켰던 것이다. 그래서 거의 60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부도와 석등은 건재하다. 그래도 지의류 피해나 철로 만든 쐐기(탑이나 석등의 균형유지를 위해서 사이사이에 놓는 것)가 녹이 쓸어 녹물이 석등을 덮고 있었서 작년에야 부도와 석등은 보존처리를 했고 뒤에 지공선사 부도와 나옹선사 부도는 지금 보존처리 중인데 가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석재 가공의 기본은 망치와 정이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장인이 지금처럼 도면을 그리고 짜여진 도면을 보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장인의 솜씨로 만들었다. 비록 다른 석등들과 비교하면 불교가 주된 사상이었던 고려를 넘어 조선 초기에 만든 석등이라서 뛰어난 기교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자의 모습만을 보자면 그 표정하며 용맹하게 화사석(불을 지피는 곳)을 바치고 있는 모습은 멋있기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힘든 표정 같기도 하며 또 귀엽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그 석등에 있는 두 마리 사자는 각기 다른 모습이다.

 

정면에서 보면 오른쪽은 좀 더 정교하고 뭔가 비례가 맞는 반면 왼쪽은 사자가 좀 엉성해 보이고 뭔가 오른쪽에 비해서 사자가 어눌해 보인다. 아마도 한쪽은 진짜 장인이 하고 한쪽은 그 장인의 조수가 스승을 보면서 능력껏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약간의 귀티나 보이는 이 석등과 무학대사 부도는 완벽한 조화 속에서 삼부도 맨 앞에서 자신을 뽐내고 있다.

 

 가을의 정취와 함께 이 석등과 부도를 보고 있으면 그 앞에 펼쳐진 풍경과 함께 이곳에서 오랜시간을 거뜬하게 버틴 장중함이 돋보인다.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 아직 손도 덜가고 기교같은 것으로 덮혀있지 않은 수수한 이 문화재를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문화재는 9월 정도에는 불자들이며 등산객이 좀 와서 보기도 했지만 11월이되며 좀 추워지니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참 안타깝다. 

쌍자자 석등을 중심으로 그 위로 올라가면 지공선사 나옹 선사 부도가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천보산 등산로가 나온다. 이미 산은 많이 풍화되어 빨간색을 띤 흙들이 보이고 어느 정도 올라가면 평평한 땅에 정자하나 있었음직한 곳이 보인다. 생각하건데 실제로 작은 땅에 돌들이 정교하게 쌓여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은 한번 산불이 났었는지 나무들이 타 있고 그 평평한 평지쯤에서 보면 저 멀리 나옹선사의 치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가 보인다. 이건 현재 다시 만든 것이고 얼마 전에 불을 먹어 다 깨져서 보존처리 중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회암사로 가면 불교 유적의 결정체를 볼 수 있다. 어디서 그 유명한 스님들의 부도를 한꺼번에 볼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디 이런 곳에서 산과 물과 자연을 즐길수 있을것이란 말인가.

 

우리 주변엔 수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단 우리가 찾아보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내가 간 곳도 별 생각없이 석등만을 생각하면서 간 길이었지만 가는 길에 보았던 많은 풍경들과 그 아름다움에 내가 운은 좋은 사람이란 걸 느꼈다. 또한 아직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아서 더 제대로 문화재를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생각 하건데 유명하지 않다고 해서 그 문화재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유명도 별것도 아니라지만 내가 갔던 회암사지와 그 곳의 석등과 부도들... 결코 잊혀져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화재들의 반이나 차지하는 불교 문화재. 경배의 대상이어야 하고 우리가 찾아서 가꿔야 하는 문화재들이다. 난 부디 이곳이 잊혀지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장소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꽁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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