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아침은 끔찍한 뉴스를 접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수원 화성의 서장대 방화로 2층 누각이 타버렸다는 뉴스입니다. 얼마 전 창경궁의 문정전의 방화 소식으로 놀란 가슴을 채 진정 시키지도 못한 상태에 날아온 비보 앞에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문정전이 어떤 곳입니까? 임금의 편전으로 지금 표현으로 집무실 입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이 중축했는데 일제시대에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헐어버린적이 있는 비운의 전각입니다. 그런 아픔이 있는 문정전이 묻지마 방화로 또다시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문 한쪽과 공포부분만 손상을 입어 복구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라니..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서장대 방화… 서장대는 2층 누각이 완전히 타버리고 1층 지붕이 손상되어 거의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정말 이러한 문화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단 말입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화성에서 팔달문, 화홍문, 방화수류정과 함께 아주 좋아하는 곳입니다.
서장대는 팔달산에서 가장 높은 꼭대기에 총 지휘할 수 있는 장대입니다. 장대에 서면 산을 두르고 있는 백리 이내의 화성 전체의 동정을 앉아서 살필 수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행 궁을 보살펴야 하고 성 전체의 동정을 낱낱이 알아야 하며, 봉돈에서 받아들인 국경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하는 곳이 서장대입니다. 그리 크지 않으나 이층으로 지어져 위엄이 한껏 뽐내는 건물입니다. 정조는 이곳 서장대에서 1794 음 2월 12일 어머니인 혜경궁을 홍 씨를 모시고 직접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채 화성군대인 장용외영이 주축이 된 대규모 주,야간 군사 훈련을 실시합니다. 이곳 서장대에서 대포를 쏘고 태평소를 불면서 청용기와 청용등을 세우면 동문(창룡문)에서 대포로 대답하며 고함 질렀으며. 주작기에 주작등을 세우면 남문(팔달문)에서 대포 쏘며 고함치고, 백호기와 백호등이면 서문(화서문), 현무기와 현무등이면 북문인 장안문에서 응포하며 고함 질렀습니다. 그러다가 신기전(신호용 불화살)을 쏘니 온 성안에 삼두화(세 곶이로 된 횃불)가 밝혀졌습니다. 성안의 민가에서는 집집마다 등을 하나씩 내걸어서 협조하였으니 단순히 군사훈련이 아니라 조선의 무력과 왕조의 굳건함, 임금의 개혁의지를 만방에 과시하는 화성 전체의 집단 민,관,군 합동행사 였던 셈입니다.(정조의 을묘년 능행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를 보아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8일간의 장엄한 역사적 드라마를 보여주는 김 홍도의 그림들과 함께..) 정조와 수원 화성 공사 총 책임자인 번암 채 체공은 이곳 서장대를 그 어떤 화성의 건출물보다 아꼈습니다. 채 제공은 화성의 시설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서장대의 상량문만 지었고 또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조 임금이 [화성장대]라고 직접 쓴 편 액을 달았습니다. 총리대신의 상량문과 임금의 친필을 걸었다는 것을 보면 이 장대의 성격이 어땠는데 짐작이 가지 않으신지요? 아무리 우리시대에 복원한 문화재라 하더라도 우리의 생각과 정신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기에 우리시대 건물이 아닙니다. 또한 그러한 문화재들은 우리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국민 모두가 살뜰히 아끼고 보담고 지켜 영원히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건축물들입니다. 더구나 화성은 인류 전체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곳으로 지정된 세계문화 유산이지 않습니까? 화재의 원인이 이벤트성 행사만 쫓아다니는 문화재청 장관 때문이기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묻지마성 방화 및 범죄의 사회심리적 원인이 어떻다고 말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는 얼마나 문화재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불을 끈다고 소방차의 강력한 물줄기를 그대로 문화재로 쏘아버리는 현실, 소화기의 약품이 문화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단 한번도 제대로 검토되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우리의 빈약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에 찍은 화성장대의 당당한 모습
아무리 훌륭한 수습책도 부족한 대비책만 못한 법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가야 하겠습니다. “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겠는가? ” 화성축성 총책임자 채 제공의 서장대 상량문 中 에서
금강안金剛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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