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 주지 보일스님
‘화경청적’은 일본 다도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에 대한 긍정이라도 하듯 중국이나 한국의 차인들은 다투듯이 자신들의 차 이미지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낱말을 자신의 나라 고전에서 따와 정립해 보려고 애써왔다. 예컨대 한국의 다도 정신은 ‘중정’이며 중국차의 정신은 ‘精行儉德’이라는 등의 주장이 그러한 것이다
和敬淸寂은 차를 다루는 사람들의 공통용어
그러나 이것을 엄밀히 살펴보면 글자만 다를 뿐 그 내용은 모두 ‘화경청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며, 어떤 면에서는 화경청저그이 모방이라는 점을 더욱 드러내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일본인이 세운 다도정신이라는 것은 선원의 <청규>처럼 조목조목 체계적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경청적이란 말 자체가 이미 400여년 전에 <청규>의 용어로 아예 정립이 된 상태이다.
중정이나 정행검덕 또한 비록 오래된 이론이긴 하지만 근래사람들이 고전에서 따와서 이것으로 갑자기 다도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급조된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화경청적이란 말은 차를 다루는 사람들의 공통용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나라나 단체만 전매적으로 써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가령 ‘도’라는 글자의 의미를 중국이 먼저 발명하고 사용하였다고 해서 한국이나 일본은 ‘도’라는 낱말을 피하고 다른 글자를 써야 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도’라는 것의 의미와 들자는 이미 극동문화권에 있어 나라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보편적 언어일 뿐이지 특별히 일본 다도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또 일본인도 자신들의 다도정신 표현이 화경청적이라고 했을 뿐, 다른 나라가 이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을 한 일도 없다.
한국의 차인들이 일본의 잘 보존된 다도의 의식과 정신에 대해 부러움 내지는 애국심(?)같은 것이 작용하여 일본인이 쓰는 용어가 아닌 한국식 다도정신을 급조하고, 중국인들도 일본을 모방하여 자신들의 다도정신을 만드는 등(중국은 자신들의 선조가 화경청적이라는 낱말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사람이 쓰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음)고대의 정신을 공유하기보다는 아류적 낱말찾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茶禪의시조 수단선사의 다도제문
화경청적이 일본의 다도 정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은 리큐가 ‘사규칠칙’과 같은 다도의 법규를 제정하면서부터 인데, 그 후 일본의 대표적 다도 정신인양 고정화 되었다.
그러나 화경청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사람의 발명품이다. 송나라 白雲 守端禪師가 다선도량을 五祖山에 창설하였을 때, 그의 제자인 元甫長老 즉 劉元甫가 화경청적을 茶道諦門(다도의 요긴한 관문)이라고 정하고 다도회를 조직한 것이 화경청적의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관한 기록은 일본의 대응국사 남포소명이 9년동안 송나라에 유학해서 경산의 虛堂선사의 법을 얻고 문영 4년에 귀국 했을 때에 전달했던 칠부의 ‘다전’일부에 유원보가 지은 ‘다당청규’3권이 있고 그중의 ‘다도궤장’과 ‘사제의장’을 뒤에 초록한 것을 ‘다도경’이라고 이름지어서 간행했는데, 이 책에 의하면 수단선사가 다선의 시조임과 더불어 화경청적에 대한 출저를 확인할 수 있다.
수단선사나 원보장로는 차인이기 앞서 선승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창한 차의 정신은 선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다선도량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따라서 화경청적도 근본적으로 불교적 관념이 담겨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차를 마시는 것도 일상수행의 하나이기 때문에 불교(혹은 선)의 이해 없이 화경청적을 논한다는 것은 마치 원숭이가 뜻도 모르면서 사람의 움직임만 따라하는 것과 같다. 화경청적의 불교적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和는 일체 형상과 마음이 화합하는 것
화는 화합 혹은 조화로 이때의 화합은 일체 형상과 마음의 모드 법이 모여 화합하여 서로 여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어떠한 것이 서로간에 어긋나서 맞지 않는 것을 조절하여 일치점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는 단지 외부적으로만 적당한 섞임이 아니라 물과 젖이 섞이듯 안과 밖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敬은 일체의 존재를 공경하는 것
경은 생명 있는 것부터 무정물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존재에 대하여 공경하는 것으로 앞의 和와 유기적 관계이며 이 둘을 합하여 화경이라고 부른다. 경을 나타내는 대표적 인물이 모든 중생을 부처의 대상으로 보아 존경한다는 상불경보살 이며, 이러한 대승의 보살이 중생과 같이 하는 데 있어 6종의 방법을 쓰는데 이것을 일러 ‘육화경’이라고 한다.
淸은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더러움을 깨끗이 하는 것
청은 깨끗함, 즉 청정함을 의미하는 말인데 자신의 내면세계를 깨끗이 하는 ‘자성청정’과 외부의 모든 더러움을 깨끗이 한다는 뜻의 ‘離垢淸淨’ 두 가지가 있다.
寂은 마음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해탈, 선정의 상태
적의 문자적 의미로는 고요하다는 것이지만 불교적 해석은 生死하는 인과를 없애 다시는 어두운(迷) 일을 반복하지 않는 적정한 경계를 말한다. 다시 말해 마음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적 이라고 하며 해탈, 선정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다도에 있어 화경청적을 일본인들은 화와 경은 다사(차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 주인과 손님 상호간에 느끼고 공감되는 상태들을 의미하고, 청과 적은 주로 차의 정원, 다실과 다기에 관련된 것으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분류도 기본적으로 정진하는 마음을 유지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다도정신을 그들은 ‘와비정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음과 몸, 집안과 차도구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차는 언제나 ‘중정’에 들어갈 것이며, 정밀한 행(精行)과 검소한 덕(儉德)이 드러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무대에서 배우가 하는 연기가 자신의 평소의 삶과는 무관한 듯, 꾸준한 수행 없이 차인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가끔씩 연출되는 화경청적은 문자 그대로 차의 행위만 남아있을 뿐이지, 차의 도(茶道)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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