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내용 개관
< 법보리장(法菩提場) 초회 6품 >
1.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화엄경》 전체의 서분에 해당한다. 처음에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법보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비로자나 법심으로서 미묘한 덕을 나타내면서 경의 근원을 제시한다. 다음에 보현보살을 비롯한 보살대중과 집금강신을 비롯한 39류의 화엄성중 등 40중의 권속들이 회상에 모이는데, 그들을 세주라고 부른다. 그들은 걸림 없이 원만한 공덕으로 화엄경 법문을 들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부처님의 덕을 게송으로 찬탄하며 불세계를 장엄한다. 이로써 대법을 연설할 도량과 법을 말씀할 교주와 법문을 들을 대중이 함께 원만하여서 화엄경의 무량한 법문을 일으킬 준비가 온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2.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세주들이 마음 속으로 40가지 질문을 일으키니 부처님은 대답에 앞서 먼저 입과 치아와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으신다. 무량한 세계와 불.보살을 나타내고, 광명으로는 설법할 법주(法主)를 비추고, 국토를 진동케 하며, 연꽃으로 화엄의 정토를 보이신다. 질문의 30가지는 부처님과 부처님 세계에 대한 것이며 뒤의 10가지는 보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이후 《화엄경》의 교설은 전체적으로 40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불.보살의 바르고 넓은 경계를 교설하니 경의 명칭이 '대방광불화엄경'이 되는 것이다.
보살대중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게송 중에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隨緣赴感靡不周, 而恒處此菩提座 (부처님께서는 법계에 충만하시어, 널리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인연 따라 감응하여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나, 항상 이 보리좌에 앉아 계시도다)"는 우리 나라 사찰의 법당 주련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3.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
각 회의 설주들은 2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삼매에 들어서 지혜를 얻은 뒤에 깨어나서 설법을 한다. 여기서 삼매는 일체 부처님의 위신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력(本願力)과 보살 각자의 선근력(善根力)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즉 설주와 청중들 모두 삼매를 통해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보현보살이 부사의한 미묘법문 설법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보현보살이 일체 부처님의 가피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력과 자신의 행원력으로 지혜를 얻어 출정한 것이다. 보현보살의 입정과 출정을 통해 《화엄경》은 보살의 수행과 중생의 신앙 체계가,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보현보살이 세계해(世界海)의 십사(十事 -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 세계해에 의지하는 머무름·형상·체성·장엄·청정방편·부처님 출현·겁의 머무름·겁의 변천·차별없는 일)를 10종으로 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도 10종이 있으니, 여래의 위신력과 중생의 업행과 보살의 원행 등으로 세계가 성취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5.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보현보살이 다시 화장세계의 장엄을 말한다. '화장장엄세계해'는 비로자나불이 과거 수겁에 걸쳐 보살행을 닦을 때에 큰 서원으로 청정하게 장엄한 것임을 밝힌다. 화엄장엄세계해는 풍륜(風輪)이 받치고 있으며 주위에는 철위산이 있고, 향수해(香水海)의 큰 연꽃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연화장세계의 온갖 경계는 바로 세계해 미진수의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된 것이다.
6.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과거생 인연을 설하는 내용이다. 오랜 겁 전에 승음(勝音)세계에 일체공덕수미산승운 부처님이 출현하실 때, 도성의 대위광(大威光)태자가 부처님을 섬기면서 10종 법문[일체불의 공덕륜삼매·일체법의 보문다리니·반야바라밀·대자·대비·대희·대사·대신통·대원·대변재]을 증득하게 된다.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다시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법문을 들어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고 비로자나불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제1회 6품은 모두 믿음(所信)의 대상으로서 불세계의 묘한 공덕과 훌륭한 인행(因行)을 보인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을 인과이며, 과보를 말하여 신심을 내게 하는 것이다.
< 보광명전(普光明殿) 2회 6품 >
2회의 6품에서는 믿는(能信) 행에 대한 교설이 이어진다. 문수보살의 뛰어난 지혜에 의해서 중생들이 신심을 성취케 해주는 법회이다. 믿음의 대상, 믿음의 내용, 믿음의 성취 방법, 믿는 자의 태도, 믿음의 공용(功用) 등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7.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
부처님이 보광명전에서 신통을 나투시니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구수(九首, 覺·財·寶·德·目·勤·法·智·賢首)보살과 시방세계의 무수한 보살들이 모여들었다.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설하며 부처님의 신업(身業) 세계가 한량없음을 믿게 하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신업이 모두 근기에 맞추어 가지가지 묘한 상호를 보이며 자유롭게 화현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즉,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한량없어서 부처님의 명호도 한량없다는 것이다.
8. 사성제품(四聖諦品)
중생의 욕망이 각각 다르므로 부처님의 가르치는 방법도 같지 아니함을 보이기 위하여, 문수보살이 시방 법계의 모든 세계에서 사성제를 제각기 다른 열 가지로 들어서 설한다. 이는 부처님의 구업(口業)세계가 한량없음을 뜻한다.
9. 광명각품(光明覺品)
부처님은 두 발바닥으로 백억의 광명을 내어 시방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니 일체가 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문수보살과 구수보살 등 시방세계보살들이 게송으로 부처님 세계를 찬탄한다. 이는 부처님의 의업(意業) 세계가 한량없음을 보인 것이다. 대개 뜻으로 하는 업은 헤아릴 수 없이 자재한 것이므로 광명으로써 보인 것이다. 초회에서는 부처님이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은 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보이신 것이고, 여기서 발바닥으로 광명을 내신 것은 신심(信心)이 불과(佛果)에 오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이상의 3품은 믿음의 의지가 될 과위의 덕을 밝혔고, 다음의 3품에서는 능히 믿는(能信)행을 보이는데, 믿는 데는 지혜와 수행과 공덕이 있는 것이다.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문수보살이 차례로 연기·교화·업과·설법·복전(福田)·정교(正敎)·정행(正行)·조도(助道)·일승(一乘)의 아홉 가지 이치를 물어보자 구수보살들이 게송으로 답하고, 끝으로 구수보살들의 불경계(佛境界)에 대한 물음에 문수보살도 게송으로 여래의 깊은 경계는 허공과 같아서 일체 중생이 거기 들어가면서도 실제로는 들어가는 바가 없다고 대답하며 믿음의 근거가 되는 지해(知解)를 내게 하였다. 이 열 가지 문답을 십심심(十甚深)이라고 한다. 이는 청정한 신심을 개발하기 위함이다.
11. 정행품(淨行品)
지수보살이 어떻게 해야 신구의 삼업을 수승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문수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善用其心] 온갖 뛰어난 공덕을 얻어 부처님도에 머물 수 있을 것이라 하며, 140원을 일으키도록 게송으로 권한다. 바른 지해에 대한 바른 행을 보이기 위하여 일상 생활의 기거 동작과, 보고 듣는 대로 서원을 내어 행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밝힌 것이다.
12. 현수품(賢首品)
청정한 행을 닦는 데에는 반드시 큰 공덕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해와 수행이 원만하여 널리 성취하는 수승한 공덕을 밝히는 내용이다. 먼저 청정행의 대공덕을 설한 문수보살의 요청에 따라, 현수보살이 신심의 공덕과 공능을 게송으로 밝힌다. 신심의 공덕을 찬탄하고, 다시 한량없는 큰 작용을 들어 열 가지 삼매를 말하며 교묘한 비유로 깊은 뜻을 말하였고, 끝으로 법이 깊고 얕은 것과 믿고 이해하기에 어렵고 쉬운 것을 비교하여 실제로 증득함을 보이고 있다.
이 <현수품>에 10종 삼매의 첫째로 해인삼매(海印三昧)가 교설되어 있는데, <십지품>·<여래출현품>·<입법계품> 등에서도 나타난다. 해인삼매는 '모든 영상이 바다에 비치듯이 일체 색상(色相)이 지혜의 바다에 다 비친다'·'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한량없는 일체 제법이 이 삼매에 다 들어간다'·'바다 속에 보배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일체법과 법의 선교(善巧)가 이 삼매에 들어 있다'는 비유적인 의미이다.
보살이 해인삼매에 드는 3종 인연을 시방 일체 제불(諸佛)의 가피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 위신력과 보살이 닦은 선근 공덕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보살이 닦은 행원력이 인(因)이 되고 주불과 제불의 본원 가피력이 연(緣)이 되어 삼매의 과(果)를 이룬다고 하겠다. 특히 화엄학에서는 해인삼매가 모든 삼매를 섭수하는 것이며, 《화엄경》전체가 해인삼매 속에서 설해진 것이라고까지 부각되고 있다.
이상의 2회의 6품은 믿는(能信) 행에 대한 교설을 통해서, 믿음은 모든 보살도를 받쳐주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신심을 온전히 구족하면 바로 부처가 되는 때이므로 이를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고 한다.
< 도리천( 利天) 3회 6품 >
3회의 6품은 수미산정의 도리천궁에서 법혜(法慧)보살이 설주가 되어 십주(十住) 법문이 설해진다. 여기서 보살의 주처, 십주보살행, 발심의 인과 연, 화엄의 관행법 등이 주요한 내용으로 나타난다.
13.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淨品)
부처님이 성도하신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않고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제석천궁에 올라가서 걸림 없이 화신(化身)을 나타내는 일을 보이신다. 제석천왕이 궁전을 장엄하고 사자좌를 놓고 맞이하여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다. 부처님이 결가부좌하니 시방세계 또한 그와 같이 됨은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법혜보살을 비롯한 10혜보살[法·一切·勝·功德·精進·善·智·眞實·無上·堅固慧]들을 이르게 한다. 부처님이 두 발가락으로 광명을 놓아 수미산 꼭대기를 비추자 모든 대중이 제석천 궁전 안에 나타나고, 모든 보살들이 그 경계를 게송으로 찬탄한다. 여기서 보살들의 돌림자가 '혜'인 것은 지혜가 보살행의 바탕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15. 십주품(十住品)
3회의 본론으로서 십주품에서는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무량방편삼매(無量方便三昧)에 들었고, 부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지혜를 받고는 삼매에서 깨어나서 보살이 머무는 십주의 법문을 설한다. 십주는 다음과 같다.
①초발심주(初發心住) - 보살이 처음 발심하는 자리
②치지주(治地住) - 심지를 다스리는 자리
③수행주(修行住) - 일체 법을 관찰하며 수행하는 자리
④생귀주(生貴住) - 부처님 교법으로부터 나는 귀한 자리
⑤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 보살이 선근을 닦아 방편을 구족하는 자리
⑥정심주(正心住) - 마음이 안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리
⑦불퇴주(不退住) - 마음이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는 자리
⑧동진주(童眞住) - 동자와 같이 순진무구한 자리
⑨법왕자주(法王子住) - 법왕의 소행을 아는 왕자의 자리
⑩관정주(灌頂住) - 왕자가 관정식에서 왕위에 오르는 것처럼 일체 종지를 얻는 최고의 자리.
이러한 십주행은 십지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 십지에 포섭되는 것이다.
16. 범행품(梵行品)
출가자를 위한 보살행으로서 10종의 관행법(觀行法)이 설해진다. 법혜보살이 정념천자의 질문을 받고 출가자가 범행을 닦아 무상의 보리도에 이르는 10가지 법[身·身業·語·語業·意·意業·佛·法·僧·戒]을 설한다. 이 열 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아 뜻을 내고, 이에 대한 범행을 관찰하도록 한다. 참된 지혜에 의지하여 여래의 열 가지 힘을 닦음으로서, 관과 행이 서로 어울리고 자비와 지혜가 원융하여 처음 발심하는 자리에서 곧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은 한량없어 마땅히 부처가 될 것임을 법혜보살이 제석천왕의 물음에 따라 설하는 내용이다. 앞에서 수행하는 지위를 갖추었으므로 훌륭한 공덕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며, 십주의 공덕은 단계적으로 더 훌륭함을 말한다. 그 중에서 특별히 초발심주의 공덕을 찬탄하는데, 처음 발심한 공덕은 광대하고 끝이 없어 보현보살의 모든 덕을 포섭하며, 인행(因行)과 과덕(果德)을 구족한 것으로 그 공덕이 법계와 동등하다고 설한다.
18. 명법품(明法品)
전품에서 초발심 공덕을 말한데 대하여, 이 품에서는 정진혜보살의 물음을 받고 법혜보살이 방일하지 않고 십바라밀법[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方便·願·力·智바라밀로 번역됨]으로 행하는 일의 청정함을 설한다.
십바라밀은 《화엄경》의 보살행 전체를 포섭할 수 있다. 따라서 화엄보살행을 다 포섭하는 십지보살행도 역시 십바라밀로 묶어서 말할 수 있다.
< 야마천(夜摩天) 4회 4품 >
4회의 4품에서는 《화엄경》의 유심(唯心)설과 보살의 십바라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승의 육바라밀에 사종를 더하여 10이라는 원만수로서 모든 보살행을 나타낸 것이다.
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를 떠나시지 않고서, 야마천궁의 보장엄전(寶莊嚴殿)으로 향하신다. 야마천왕은 궁전 안에 보련화장 사자좌를 만들고 영접한다. 천왕은 불공덕과 야마천궁의 길상함을 게송으로 찬탄한다.
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
친혜(親慧) 세계의 공덕림보살을 위시하여 혜림보살 등의 십대보살과 시방세계 한량없는 보살들이 함께 모여서 온다. 부처님은 발등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셨다. 열분 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게송으로 찬탄한다. 림(林)자 돌림의 보살 등장은 보살의 공덕행이 수풀처럼 쌓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각림보살의 10게송은 유심게(唯心偈)로 알려져 있는데, 마치 화가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다고 하며 마음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다. [6송 -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實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릴 수 있으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겨나서, 법을 만들지 못함이 없도다] 그리고 열 번째 게송의 마지막 구절에 유명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나온다. 일심 또는 유심사상은 《화엄경》의 핵심 내용의 하나이다.
21. 십행품(十行品)
제4회의 중심 품으로서 보살의 열 가지 행을 말한 것이니, 공덕림 보살이 선사유(善思惟)삼매에 들었다 깨어나서 보살의 열 가지 행을 설한다. 10행은 10바라밀에 대응하는 것이다. 10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환희(歡喜)행 -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여 중생을 즐겁게 한다.
②요익(饒益)행 - 지계바라밀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
③무위역(無違逆)행 - 인욕바라밀로 중생을 어기지 않는다.
④무굴요(無屈撓)행 - 정진바라밀로 도에 정진하여 물러나거나 굽히지 않는다.
⑤무치란(無癡亂)행 - 선정바라밀로 정혜가 바르고 밝아서 어리석거나 어지러움이 없다.
⑥선현(善現)행 - 반야바라밀로 경계와 지혜가 밝아서 바르게 나타난다.
⑦무착(無着)행 - 방편바라밀로 중생을 잘 포섭하되 집착이 없다.
⑧난득(難得)행 - 원(願)바라밀로 얻기 어려운 대원을 성취한다.
⑨선법(善法)행 - 역(力)바라밀의 힘으로 참된 법을 설한다.
⑩진실(眞實)행 - 지바라밀로 진실한 행을 이룬다.
이 때 시방세계가 진동하고 무수한 보살들이 와서 공덕림보살을 찬탄한다.
22.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공덕림보살이 열 가지 다함없는 무진장행[신(信)·계(戒)·참(懺)·괴(愧)·문(聞)·시(施)·혜(慧)·염(念)·지(持)·변장(辯藏)]을 설하여 보살들로 하여금 무상보리를 성취케 한다. 여기서 장(藏)은 출생과 함장의 뜻을 겸비하니, 만덕을 포섭함과 묘용을 냄이 다함 없음을 의미한다.
십무진장행으로써 앞에서 말한 십행의 법을 이루어 무진하게 하고, 다음에 이어지는 십회향의 법으로 나아가게 한다.
< 도솔천(兜率天) 5회 3품 >
5회의 주요 내용은 10회향법문이다. 여기서 설주는 금강당(金剛幢)보살이다.
23.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와 야마천궁을 떠나지 않고 도솔천으로 올라가 보배로 장엄한 궁전으로 나아가신다. 도솔천왕은 궁전에 마니장 사자좌를 베풀고 부처님을 영접한다.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금강당보살을 위시한 당(幢) 돌림자의 열 보살이 수많은 보살들과 함께 참례한다. 부처님은 두 무릎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고 십대 보살들이 차례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다. 설주의 이름에서 금강은 굳은 지혜를, 당은 지혜를 바탕으로 한 자비의 깃발을 말한다.
25. 십회향품(十廻向品)
금강당보살이 지광(智光)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 열 가지 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不壞·等一切諸佛·至一切處·無盡功德藏·隨順堅固一切善根·等隨順一切衆生·眞如相·無着無縛解脫·等法界無量廻向]을 설한다. 십회향은 십바라밀의 체가 되는데, 삼처회향으로 묶을 수 있다.
첫째, 대비심을 중생에게 베풀어 교화하기 위하여서는 아래로 중생에게 회향하고[중생회향],
둘째, 위로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보리에 회향하고[보리회향],
셋째, 회향하는 사람이나 이치가 모두 고요함으로 진여의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다.[실제회향]
그리하여 그지없는 수행의 바다로 보현 공덕을 성취하는 일을 말하였다. 십회향은 앞에 말한 십주와 십행을 포함하여 위로는 십지에 올라가는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 십회향은 원(願)의 성격이 강하여 '십회향원'으로도 일컬어진다.
원효대사는 《화엄경》을 주석할 때 <십회향품>까지만 한 뒤에, 절필하고는 중생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원효는 《육십화엄》을 주석하였는데, 이 품의 명칭이 <금강당보살십회향품>으로 되어 있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6회 1품 >
<십지품>에서는 3∼5회에서 살핀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을 통틀어 포섭하는 십지보살행이 시설된다. 이 십지보살행은 화엄이 일승임을 잘 보여 주는 것이며, 십지사상은 인도 대승불교사상의 전개과정과 오늘날 대승불교권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6. 십지품(十地品)
십지법문은 욕계(欲界) 육천의 최상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궁의 마니보장전에서 이루어진다. 설주는 금강장보살인데,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대지혜광명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 십지법문을 설한다. 지(地)는 지혜의 계위를 의미한다.
①환희지(歡喜地) - 십대원을 성취하고 보시바라밀로 기쁨에 넘치는 지위
②이구지(離垢地) - 십선업도를 행하고 지계바라밀로 모든 번뇌의 때를 여의는 지위
③발광지(發光地) - 삼법인을 관하고 인욕바라밀로 지혜의 광명이 빛나는 지위
④염혜지(焰慧地) - 삼십칠조도품을 닦고 정진바라밀로 지혜가 매우 치성하는 지위
⑤난승지(難勝地) - 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이기기 어려운 지위이니, 사성제와 선정바라밀을 주로 닦는다
⑥현전지(現前地) - 세간 출세간의 일체 지혜가 다 나타나는 지위이니, 십이연기를 관하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⑦원행지(遠行地) - 십바라밀을 구족하면서 특히 방편바라밀을 닦아 광대한 진리세계에 이르는 지위
⑧부동지(不動地) - 원바라밀을 닦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동요하지 않는 지위
⑨선혜지(善慧地) - 역바라밀을 닦아 사무애지[法·義·辭·樂說]를 얻어 대법사가 되는 지위
⑩법운지(法雲地) - 위대한 법의 비를 내리는 지위이니 지바라밀이 가장 수승하다.
이 십지의 수행법은 보살 수행의 중심이 된다. 앞에 말한 3회의 수행[십주·십행·십회향]은 3현(賢)이라 하며, 이 십지에 들어가면 비로소 증득하여 과(果)를 이루는 것이다. 본래 한 지위가 모든 지위를 포함하고 한 가지 행에 온갖 행이 갖추어진 보현의 원만융통한 수행의 체계이다.
십지는 이처럼 십바라밀의 차례에 배대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마다 십바라밀행이 구족되어 있어 서로서로 원융한 것으로 이해한다. 결국 보살의 수행은 십바라밀을 구족하고 대비(大悲)를 으뜸으로 삼아 부처님의 지혜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사상에서 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會三歸一)에 바탕한 일승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다.
< 보광명전(寶光明殿) 7회 11품 >
7회의 11품은 십지보살행을 지나 깨달음의 경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화엄경》에 나타나는 깨달음은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을 시설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7회의 앞 10품(27품∼36품)이 등각의 경계이고, 7회 <37. 여래출현품>과 8회 <38. 이세간품>이 묘각의 경계이다. 보살행을 거치는 과위로서의 경계가 등각이라면, 부처님 본래의 깨달음의 세계가 묘각이 되는 것이다. 보살의 깨달음의 경계는 품명에서 그 내용을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27. 십정품(十定品)
제7회 11품의 서론에 해당하며, 지혜의 근본인 열 가지 선정이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이 마가다국의 고요한 법보리 도량에 있는 보광명전에서 찰나제(刹那際)삼매에 들어 여래의 모습을 나타내며 형상이 없는 데 머무르실 때 금강혜보살과 여러 보살들이 모여 왔다. 보안(普眼)보살이 보살들의 부사의하고 광대한 삼매를 부처님께 물었는데 부처님은 보현보살에게 설법하기를 청했고,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 가지 삼매를 말하였다.
십정은 넓은 광명 삼매[普光明大三昧]·묘한 광명[妙光明] 삼매·여러 부처님 국토에 차례로 가는[次第遍往諸佛國土神通] 삼매·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淸淨深心行] 삼매·과거에 장엄을 아는[知過去莊嚴藏] 삼매·지혜 광명의[智光明藏] 삼매·모든 세계 부처님의 장엄을 아는[了知一切世界佛莊嚴] 삼매·일체 중생의 차별 몸[一切衆生差別身] 삼매·법계에 자재한[法界自在] 삼매·걸림 없는 바퀴[無碍輪] 삼매들이다.
28. 십통품(十通品)
선정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보살의 신통을 말한 것이다. 십통은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신통[善知他心智神通]·걸림 없는 시공을 초월하는 눈[無碍天眼智] 신통·전생 일을 아는[知過去際劫宿住智] 신통·내생의 일을 아는[知盡未來際劫智] 신통·걸림 없이 청정하게 중생계 소리를 듣는[無碍淸淨天耳智] 신통·성품도 없고 동작도 없이 모든 세계에 가는[無體性無動作往一切佛刹智] 신통·모든 말을 잘 분별하는[善分別一切言辭智] 신통·수 없는 형상의 몸을 나투는[無數色身智] 신통·모든 법을 아는[一切法智] 신통·모든 법이 다 없어지는 삼매에 들어가는[入一切法滅盡三昧智] 신통이다.
29. 십인품(十忍品)
열 가지 지혜의 경계가 되는 십인을 말한 것이니, 음성인(音聲忍)·순인(順忍)·무생법인(無生法忍)·여환인(如幻忍)·여염인(如焰忍)·여몽인(如夢忍)·여향인(如響忍)·여영인(如影忍)·여화인(如化忍)·여공인(如空忍)이다.
여기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법공지(法空智)로서 일체법이 공하다는 이치를 터득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줄여서 무생인이라고도 하나, 엄밀하게 구분하면 '무생인'은 인공지(人空智)로서 아견(我見)에 의해서 인식되는 인아(人我)는 모두 공하다는 이치를 터득하는 지혜이다. 그리고 '무생법(無生法)'은 남이 없는 법으로서 불생불멸에 대한 깨달음의 지혜를 의미한다.
30. 아승지품(阿僧祗品)
심왕(心王)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일백낙차라는 수를 설하면서 말할 수 없는 제곱을 극수로 하는 큰 수에 대해 설명하신다. 아승지[10의 56승]라는 큰 수가 나온다. 이를 통해서 불·보살의 지혜의 경지가 광대무변하여 무한히 큰 수와 같거나 이보다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31.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심왕보살이 부처님 세계의 수명을 설하는 내용이다. 사바세계인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의 한 겁은 극락세계 아미타불 세계의 하루 낮 하루 밤이라고 하며, 이렇게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의 수명이 다 다르다고 설하신다. 보현보살과 함께 수행하는 큰 보살들이 모두 그 아득한 불세계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이는 무량한 부처님들의 수명은 그 세계의 근기에 따라 장단이 자재하다는 불덕(佛德)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또한 시간적으로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의 경계를 보인 것이다.
32. 제보살주처품(諸菩薩住處品)
심왕보살이 시방의 보살주처를 말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동북방에 청량산(淸凉山)이 있으니 지금 문수사리보살이 그의 권속 일 만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 있으며 법을 연설한다는 것이다. 동방 선인산(仙人山)의 금강승(金剛勝)보살, 서방 금강염산(金剛焰山)의 정진무외행(精進無畏行)보살, 남방 승봉산(勝峰山)의 법혜(法慧)보살, 북방 향적산(香積山)의 향상(香象)보살, 동남방 지제산(支提山)의 천관(天冠)보살, 서남방 광명산(光明山)의 현승(賢勝)보살, 서북방 향풍산(香風山)의 향광(香光)보살, 바다 가운데 금강산(金剛山)의 법기(法起)보살 등이 언급된다.
이 품에 보이는 보살과 그 주처의 명칭들은 오늘날 화엄신앙도량을 추정케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33.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부처님이 청련화장(靑蓮華藏)보살에게 부처님의 국토와 부처님이 닦아서 생기는 과덕(果德)의 불가사의함을 말하게 하였고, 청련화장보살은 부처님의 무량 청정한 몸과 걸림없는 눈과 한량없는 경계와 지혜와 부사의한 삼매와 해탈 등을 말하였다.
34. 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
보현보살이 여래의 거룩한 모습을 말하는 내용이다. 여래의 정수리에는 보배로 장엄한 32가지 거룩한 모습이 있어서 그 가운데에 한량없는 광명 그물이 있어 여러 가지 광명을 놓는다고 하며, 이어서 여래의 눈·코·혀·입·이·어깨·가슴·손·발·발가락까지 각 부위별로 총 97가지를 비롯하여 세계의 티끌 수만큼 거룩한 모습이 있다고 말하였다.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如來隨好光明功德品)
여래에게 갖추어져 있는 잘 생긴 모습의 공덕을 부처님께서 친히 설한 내용이다. 보수(寶手)보살에게 '여래·응공·정등각에 따라서 잘생긴 모습[隨好]이 있으니, 이름은 원만왕(圓滿王)이요, 이 잘생긴 모습에서 큰 광명이 나오니 이름이 치성(熾盛)이라, 7백만 아승지 광명으로 권속을 삼았느니라'고 하며 설을 이어나간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품은 <30. 아승지품>과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뿐이다.
36. 보현행품(普賢行品)
제2회의 <7. 여래명호품>부터 앞의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까지는 차별의 인과를 말한 것이고, 이 품과 아래의 <37. 여래출현품>은 평등한 인과를 설하는 것이다. 이 품에서는 보현보살이 보살의 평등한 인행(因行)을 설하는데, 특히 보살의 성내는 마음을 경계하고 있다.[한 번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100만 가지 장애의 문을 이룬다, 一障一切障] 특히 '일체 중생의 몸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 몸에 들어간다'고 하는 일입일체 일체일입(一入一切 一切一入)의 상입(相入)의 세계가 두드러지게 설해지고 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 :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보현행품>은 아래의 <여래출현품>과 함께 화엄가들에 의해 '법계연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전거로 사용된 것이다.
37.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이 품은 여래가 출현하시는 10가지 상에 대한 성기묘덕보살[=문수보살]의 질문에 보현보살의 대답으로 전개된다. 보현보살은 '여래의 출현법'은 헤아릴 수 없으며 무량한 인연에 의해 출현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어서 '여래의 몸·음성·경계·행·성정각·전법륜·반열반·견문과 친근 선근'을 다양한 비유를 통해 설한다. 앞 품에서 평등한 인을 말한 데 대하여, 이 품에서는 평등한 과를 말한 것이다.
《육십화엄》의 명칭은 <보왕여래성기품>인데, 이는 여래성기(여래출현)의 화엄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화엄성기사상은 법계연기와 함께 화엄사상의 2대 측면이 된다. '법계연기'가 연기의 측면에서 화엄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화엄성기'는 타 교학과 대비되는 사상으로서 화엄과 선(禪)과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고려 보조국사도 <여래출현품>에서 '여래의 지혜는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無處不至의 如來心]'와 '티끌 속에 삼천대천세계의 경권이 있다[微塵經卷喩]'는 구절을 보고 불심(佛心)과 불어(佛語)가 하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법성게 :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이러한 여래심의 여래출현상은 '여래장사상'의 전거가 되며, 지눌의 선교일치[돈오점수(頓悟漸修)의 화엄선 수행]의 근간이 된 것이다.
7회의 11품의 설주로 세존[30·35]과 심왕보살[31·32]과 청련화장보살[33]이 등장하지만 주로 보현보살에 의해 설해지고 있다. 보현보살의 '보현(普賢)'은 덕이 법계에 두루 미치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편적인 행을 의미한다. 화엄에서는 인과가 둘이 아닌 인행이자 과행인 것을 보현행이라는 말로 포괄하여 드러내고 있다.
< 보광명전(寶光明殿) 8회 1품 >
앞의 여러 회에서는 보살의 수행할 여러 계위를 말한 데 대하여, 여기서는 모든 지위를 포섭하여 실제로 수행함을 말하였다.
38. 이세간품(離世間品)
보광명전에 부처님 처소에서 보현보살이 불화엄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난다. 보혜(普慧)보살의 200가지 질문을 받고 보현보살이 한 물음에 각 10가지씩 모두 2000가지의 대답을 한다. 즉, 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 등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일체 보살행을 다시 한번 총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든 보살도를 총괄하면서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계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세간이란 '처염상정(處染常淨)'을 뜻하는 것이니, 동사섭(同事攝)으로 중생계에 있으나 물들지 않는 경계를 말함이며 동시에 연화장 세계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 급고독원(給孤獨園) 9회 1품 >
마지막 <입법계품>은 한 품이지만 분량으로 볼 때 《화엄경》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이 품의 별행경은 다른 화엄부 경전보다 일찍 성립된 것으로 본다. 법본 원본도 <십지품, Dasabhumika(다사부미카)>과 <입법계품, Gandavyuha(간다뷰하)>만이 존재하며, 오늘날 한역으로 남아있는《사십화엄》은 <입법계품>의 별역이다.
39. 입법계품(入法界品)
마지막 <입법계품>은 지금까지 8회의 38품에서 설해진 보살수행의 모든 것을 선재동자라는 한 사람의 수행자가 실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수보살에게서 발심한 선재(善財)동자가 53선지식을 역참하여 보살도를 배우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성취함으로써 법계에 들어간다는 줄거리이다. 이 품에서 선재의 구법 여정이나 선지식들의 갖가지 해탈법문은 화엄의 보살도를 이해하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
경의 구조 상, <입법계품>은 근본법회와 지말법회의 둘로 나눌 수 있다. 근본법회는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의 장엄한 누각에서 사자빈신(獅子斌伸)삼매에 드신 후에 설법하는 내용이다. 보현과 문수를 으뜸으로 하는 오백보살과 오백성문이 청법대중으로 등장하는데, 《화엄경》에서 성문(聲聞, 아라한)이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지말법회는 문수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남쪽으로 인간세계를 향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문수가 선재를 만나 지혜로 불법을 깨달을 수 있는 근기임을 알아보고서, 선재가 발심을 하도록 인도한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이 가르친 대로 남방으로 110성(城)을 지나면서 53선지식을 찾아 각각 묘한 법문을 얻게 된다. 처음 문수보살을 만난 것은 십신을 얻은 것이고, 남방 승락국(勝樂國)의 덕운(德雲)비구를 시작으로 53선지식을 역참하면서 십주·십행·십회향·십지의 법과 등각의 행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에게서 묘각의 법을 성취하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찬탄과 보현의 게송으로 《화엄경》이 마무리된다.
53선지식은 5보살(문수·관음·정취·미륵·보현), 5비구(덕운·해운·선주·해당·선견), 1비구니, 4우바이, 9장자, 2거사, 1천신, 10여신, 1천녀, 2바라문, 1선인, 2왕, 1선생, 3동자, 2동녀, 1뱃사공, 1외도, 1유녀, 1태자비(아쇼다라), 1태자모(마야부인) 등으로 그야말로 각계각층 인물들이다. 이러한 다양하면서도 차별없는 인적구성을 통한 수행경로는 화엄의 일승보살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선지식의 전체에서 여성이 21분이 된다는 점을 통해, 인도불교사에서 대승운동은 사부대중을 포괄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나아가 재가자의 확대 과정에서 우바이의 신심과 경제적인 지원도 주요한 지지기반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겠다.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는 52번째 선지식이 미륵보살인데 미륵은 다시 처음의 문수보살에게 선재를 보내고, 다시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역참하게 된다.[1.문수→52.미륵→문수→53.보현] 이는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화엄경》의 주요사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과가 둘이 아니라는[因果不二] 경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선재가 불과를 성취할 발심을 내는 것은 선근(善根)이 있었기 때문이니, 보살도 수행에서 수행자의 주체적인 자각이 근본적으로 중요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선재동자가 초발심에서 해탈법문을 들었으나 계속하여 선지식들을 만나 수많은 해탈문을 증득하여 불계에 들어가는 구조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화엄일승보살도를 통해 불세계를 장엄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존교단의 혁신을 지향했던 대승보살 운동의 사상적 측면에서 선재나 선지식 모두 여래출현의 존재로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오늘날 대웅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우보처로 지혜의 문수보살과 행원의 보현보살이 모셔지는 것은 화엄 삼신불[청정법신 비로자나불·원만보신 노사나불·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 의미하는 체·상·용의 변용이라고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덕상과 문수와 보현의 지혜와 행원력이 원융회통할 때 일불승과 여래의 온전한 경계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보살도의 실천과 공동체 사회를
《화엄경》은 부처님 정각의 장소를 기점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또다시 지상으로, 이렇게 우주적인 시공초월의 무대로 이동하면서 그 내용이 웅장하게 전개된다. 즉, 깨달음과 보살의 수행과 실천을 주제로 하여 부처의 세계와 그곳에 이르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화엄경》은 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 코탄 부근에서 일군의 대승사(大乘師)들이 교단을 형성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스스로 체화하려는 과정에서, 여러 경전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재조직하고 정비한 대승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크고 넓고 바른 부처님의 공덕과 진리의 장엄한 세계를 교설하는 경전이면서도, 타 경전과는 달리 방편적인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의 진면목을 화엄경을 통해서 더욱 느낄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대방광'은 깨달아야 하는 객관의 대상인 소증지법계(所證智法界)로서, 우주의 대진리인 법의 체·상·용을 가리킨다. 또 '불화엄경'은 깨닫는 주체인 능증지심(能證智心)으로서, 스스로의 마음을 닦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화엄경》에 드러나는 중심 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현상계와 본체,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전개하는 약동적인 큰 생명체인 것이다. 이 연화장세계에서는 절대진리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 대광명을 비추어 모든 묘용을 보이고 있다. 《화엄경》은 우주 질서의 통일적 조화를 상징하고 있다.
둘째, 중중무진(重重無盡)하며 원융평등(圓融平等)한 법계연기사상이다. 법계는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면서 조화를 이루는 세계이다. 화엄학의 근간인 법계연기론은 법계가 곧 연기한 세계라는 뜻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세계와 중생의 존재원리인 연기법을 화엄학의 교리로 조직한 것이다.
셋째, 유심적 세계관으로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게송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통해 표현되는데, 철학적으로 4세기 이후 유식사상(唯識思想)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중생과 그를 둘러싼 세계 전체가 모두 마음의 드러남이기에 부처와 중생이 일체임을 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부처를 초월적인 절대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 스스로 세계의 주체가 된다는 창조적인 세계관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작은 것이 큰 것이며 하나가 일체이다. 《화엄경》에서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이나 시간 등을 독립된 실체로 파악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전체와 끝없이 관련되고 상호작용하며 서로 포함하는 관계로 본다. 즉, 모든 사물과 존재의 통일성과 상호관련성 위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섯째, 첫 마음이 중요하며 시작이 끝이다. 이는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인 수행은 구도의 신앙심을 일으킨 후에 오랜 기간의 수행단계를 거쳐 완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아라한 성자에 오르는 사향사과[四向四果 - 수다원(須陀洹, 預流)·사다함(斯陀含, 一來)·아나함(阿那含, 不還)·아라한(阿羅漢)]와 보살의 52수행 단계(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화엄경》은 깨달음의 발심을 일으킨 최초 계위 이후의 모든 계위를 궁극에 이른 불계와 동등하게 설한다. 이는 초발심의 중요한 의미를 종교적 입장에서 분명하게 제시한 것이다.
《화엄경》이 제시하는 보살 수행의 참다운 길은 대승의 핵심 정신인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바른 길이다. 이는 갈등과 대립과 소외라는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며, 나아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바탕이 되는 공동체정신을 회복하는 소중한 지침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사유와 세계관과 깨달음이 온전히 담겨 있는 《화엄경》을 통해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는 불교의 수행체계를 내면화하면서, 특히 실천의 자세가 무엇보다 소중함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 법보리장(法菩提場) 초회 6품 >
1.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화엄경》 전체의 서분에 해당한다. 처음에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법보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비로자나 법심으로서 미묘한 덕을 나타내면서 경의 근원을 제시한다. 다음에 보현보살을 비롯한 보살대중과 집금강신을 비롯한 39류의 화엄성중 등 40중의 권속들이 회상에 모이는데, 그들을 세주라고 부른다. 그들은 걸림 없이 원만한 공덕으로 화엄경 법문을 들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부처님의 덕을 게송으로 찬탄하며 불세계를 장엄한다. 이로써 대법을 연설할 도량과 법을 말씀할 교주와 법문을 들을 대중이 함께 원만하여서 화엄경의 무량한 법문을 일으킬 준비가 온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2.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세주들이 마음 속으로 40가지 질문을 일으키니 부처님은 대답에 앞서 먼저 입과 치아와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으신다. 무량한 세계와 불.보살을 나타내고, 광명으로는 설법할 법주(法主)를 비추고, 국토를 진동케 하며, 연꽃으로 화엄의 정토를 보이신다. 질문의 30가지는 부처님과 부처님 세계에 대한 것이며 뒤의 10가지는 보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이후 《화엄경》의 교설은 전체적으로 40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불.보살의 바르고 넓은 경계를 교설하니 경의 명칭이 '대방광불화엄경'이 되는 것이다.
보살대중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게송 중에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隨緣赴感靡不周, 而恒處此菩提座 (부처님께서는 법계에 충만하시어, 널리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인연 따라 감응하여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나, 항상 이 보리좌에 앉아 계시도다)"는 우리 나라 사찰의 법당 주련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3.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
각 회의 설주들은 2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삼매에 들어서 지혜를 얻은 뒤에 깨어나서 설법을 한다. 여기서 삼매는 일체 부처님의 위신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력(本願力)과 보살 각자의 선근력(善根力)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즉 설주와 청중들 모두 삼매를 통해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보현보살이 부사의한 미묘법문 설법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보현보살이 일체 부처님의 가피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력과 자신의 행원력으로 지혜를 얻어 출정한 것이다. 보현보살의 입정과 출정을 통해 《화엄경》은 보살의 수행과 중생의 신앙 체계가,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보현보살이 세계해(世界海)의 십사(十事 -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 세계해에 의지하는 머무름·형상·체성·장엄·청정방편·부처님 출현·겁의 머무름·겁의 변천·차별없는 일)를 10종으로 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도 10종이 있으니, 여래의 위신력과 중생의 업행과 보살의 원행 등으로 세계가 성취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5.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보현보살이 다시 화장세계의 장엄을 말한다. '화장장엄세계해'는 비로자나불이 과거 수겁에 걸쳐 보살행을 닦을 때에 큰 서원으로 청정하게 장엄한 것임을 밝힌다. 화엄장엄세계해는 풍륜(風輪)이 받치고 있으며 주위에는 철위산이 있고, 향수해(香水海)의 큰 연꽃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연화장세계의 온갖 경계는 바로 세계해 미진수의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된 것이다.
6.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과거생 인연을 설하는 내용이다. 오랜 겁 전에 승음(勝音)세계에 일체공덕수미산승운 부처님이 출현하실 때, 도성의 대위광(大威光)태자가 부처님을 섬기면서 10종 법문[일체불의 공덕륜삼매·일체법의 보문다리니·반야바라밀·대자·대비·대희·대사·대신통·대원·대변재]을 증득하게 된다.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다시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법문을 들어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고 비로자나불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제1회 6품은 모두 믿음(所信)의 대상으로서 불세계의 묘한 공덕과 훌륭한 인행(因行)을 보인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을 인과이며, 과보를 말하여 신심을 내게 하는 것이다.
< 보광명전(普光明殿) 2회 6품 >
2회의 6품에서는 믿는(能信) 행에 대한 교설이 이어진다. 문수보살의 뛰어난 지혜에 의해서 중생들이 신심을 성취케 해주는 법회이다. 믿음의 대상, 믿음의 내용, 믿음의 성취 방법, 믿는 자의 태도, 믿음의 공용(功用) 등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7.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
부처님이 보광명전에서 신통을 나투시니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구수(九首, 覺·財·寶·德·目·勤·法·智·賢首)보살과 시방세계의 무수한 보살들이 모여들었다.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설하며 부처님의 신업(身業) 세계가 한량없음을 믿게 하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신업이 모두 근기에 맞추어 가지가지 묘한 상호를 보이며 자유롭게 화현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즉,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한량없어서 부처님의 명호도 한량없다는 것이다.
8. 사성제품(四聖諦品)
중생의 욕망이 각각 다르므로 부처님의 가르치는 방법도 같지 아니함을 보이기 위하여, 문수보살이 시방 법계의 모든 세계에서 사성제를 제각기 다른 열 가지로 들어서 설한다. 이는 부처님의 구업(口業)세계가 한량없음을 뜻한다.
9. 광명각품(光明覺品)
부처님은 두 발바닥으로 백억의 광명을 내어 시방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니 일체가 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문수보살과 구수보살 등 시방세계보살들이 게송으로 부처님 세계를 찬탄한다. 이는 부처님의 의업(意業) 세계가 한량없음을 보인 것이다. 대개 뜻으로 하는 업은 헤아릴 수 없이 자재한 것이므로 광명으로써 보인 것이다. 초회에서는 부처님이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은 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보이신 것이고, 여기서 발바닥으로 광명을 내신 것은 신심(信心)이 불과(佛果)에 오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이상의 3품은 믿음의 의지가 될 과위의 덕을 밝혔고, 다음의 3품에서는 능히 믿는(能信)행을 보이는데, 믿는 데는 지혜와 수행과 공덕이 있는 것이다.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문수보살이 차례로 연기·교화·업과·설법·복전(福田)·정교(正敎)·정행(正行)·조도(助道)·일승(一乘)의 아홉 가지 이치를 물어보자 구수보살들이 게송으로 답하고, 끝으로 구수보살들의 불경계(佛境界)에 대한 물음에 문수보살도 게송으로 여래의 깊은 경계는 허공과 같아서 일체 중생이 거기 들어가면서도 실제로는 들어가는 바가 없다고 대답하며 믿음의 근거가 되는 지해(知解)를 내게 하였다. 이 열 가지 문답을 십심심(十甚深)이라고 한다. 이는 청정한 신심을 개발하기 위함이다.
11. 정행품(淨行品)
지수보살이 어떻게 해야 신구의 삼업을 수승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문수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善用其心] 온갖 뛰어난 공덕을 얻어 부처님도에 머물 수 있을 것이라 하며, 140원을 일으키도록 게송으로 권한다. 바른 지해에 대한 바른 행을 보이기 위하여 일상 생활의 기거 동작과, 보고 듣는 대로 서원을 내어 행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밝힌 것이다.
12. 현수품(賢首品)
청정한 행을 닦는 데에는 반드시 큰 공덕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해와 수행이 원만하여 널리 성취하는 수승한 공덕을 밝히는 내용이다. 먼저 청정행의 대공덕을 설한 문수보살의 요청에 따라, 현수보살이 신심의 공덕과 공능을 게송으로 밝힌다. 신심의 공덕을 찬탄하고, 다시 한량없는 큰 작용을 들어 열 가지 삼매를 말하며 교묘한 비유로 깊은 뜻을 말하였고, 끝으로 법이 깊고 얕은 것과 믿고 이해하기에 어렵고 쉬운 것을 비교하여 실제로 증득함을 보이고 있다.
이 <현수품>에 10종 삼매의 첫째로 해인삼매(海印三昧)가 교설되어 있는데, <십지품>·<여래출현품>·<입법계품> 등에서도 나타난다. 해인삼매는 '모든 영상이 바다에 비치듯이 일체 색상(色相)이 지혜의 바다에 다 비친다'·'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한량없는 일체 제법이 이 삼매에 다 들어간다'·'바다 속에 보배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일체법과 법의 선교(善巧)가 이 삼매에 들어 있다'는 비유적인 의미이다.
보살이 해인삼매에 드는 3종 인연을 시방 일체 제불(諸佛)의 가피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 위신력과 보살이 닦은 선근 공덕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보살이 닦은 행원력이 인(因)이 되고 주불과 제불의 본원 가피력이 연(緣)이 되어 삼매의 과(果)를 이룬다고 하겠다. 특히 화엄학에서는 해인삼매가 모든 삼매를 섭수하는 것이며, 《화엄경》전체가 해인삼매 속에서 설해진 것이라고까지 부각되고 있다.
이상의 2회의 6품은 믿는(能信) 행에 대한 교설을 통해서, 믿음은 모든 보살도를 받쳐주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신심을 온전히 구족하면 바로 부처가 되는 때이므로 이를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고 한다.
< 도리천( 利天) 3회 6품 >
3회의 6품은 수미산정의 도리천궁에서 법혜(法慧)보살이 설주가 되어 십주(十住) 법문이 설해진다. 여기서 보살의 주처, 십주보살행, 발심의 인과 연, 화엄의 관행법 등이 주요한 내용으로 나타난다.
13.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淨品)
부처님이 성도하신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않고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제석천궁에 올라가서 걸림 없이 화신(化身)을 나타내는 일을 보이신다. 제석천왕이 궁전을 장엄하고 사자좌를 놓고 맞이하여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다. 부처님이 결가부좌하니 시방세계 또한 그와 같이 됨은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법혜보살을 비롯한 10혜보살[法·一切·勝·功德·精進·善·智·眞實·無上·堅固慧]들을 이르게 한다. 부처님이 두 발가락으로 광명을 놓아 수미산 꼭대기를 비추자 모든 대중이 제석천 궁전 안에 나타나고, 모든 보살들이 그 경계를 게송으로 찬탄한다. 여기서 보살들의 돌림자가 '혜'인 것은 지혜가 보살행의 바탕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15. 십주품(十住品)
3회의 본론으로서 십주품에서는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무량방편삼매(無量方便三昧)에 들었고, 부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지혜를 받고는 삼매에서 깨어나서 보살이 머무는 십주의 법문을 설한다. 십주는 다음과 같다.
①초발심주(初發心住) - 보살이 처음 발심하는 자리
②치지주(治地住) - 심지를 다스리는 자리
③수행주(修行住) - 일체 법을 관찰하며 수행하는 자리
④생귀주(生貴住) - 부처님 교법으로부터 나는 귀한 자리
⑤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 보살이 선근을 닦아 방편을 구족하는 자리
⑥정심주(正心住) - 마음이 안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리
⑦불퇴주(不退住) - 마음이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는 자리
⑧동진주(童眞住) - 동자와 같이 순진무구한 자리
⑨법왕자주(法王子住) - 법왕의 소행을 아는 왕자의 자리
⑩관정주(灌頂住) - 왕자가 관정식에서 왕위에 오르는 것처럼 일체 종지를 얻는 최고의 자리.
이러한 십주행은 십지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 십지에 포섭되는 것이다.
16. 범행품(梵行品)
출가자를 위한 보살행으로서 10종의 관행법(觀行法)이 설해진다. 법혜보살이 정념천자의 질문을 받고 출가자가 범행을 닦아 무상의 보리도에 이르는 10가지 법[身·身業·語·語業·意·意業·佛·法·僧·戒]을 설한다. 이 열 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아 뜻을 내고, 이에 대한 범행을 관찰하도록 한다. 참된 지혜에 의지하여 여래의 열 가지 힘을 닦음으로서, 관과 행이 서로 어울리고 자비와 지혜가 원융하여 처음 발심하는 자리에서 곧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은 한량없어 마땅히 부처가 될 것임을 법혜보살이 제석천왕의 물음에 따라 설하는 내용이다. 앞에서 수행하는 지위를 갖추었으므로 훌륭한 공덕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며, 십주의 공덕은 단계적으로 더 훌륭함을 말한다. 그 중에서 특별히 초발심주의 공덕을 찬탄하는데, 처음 발심한 공덕은 광대하고 끝이 없어 보현보살의 모든 덕을 포섭하며, 인행(因行)과 과덕(果德)을 구족한 것으로 그 공덕이 법계와 동등하다고 설한다.
18. 명법품(明法品)
전품에서 초발심 공덕을 말한데 대하여, 이 품에서는 정진혜보살의 물음을 받고 법혜보살이 방일하지 않고 십바라밀법[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方便·願·力·智바라밀로 번역됨]으로 행하는 일의 청정함을 설한다.
십바라밀은 《화엄경》의 보살행 전체를 포섭할 수 있다. 따라서 화엄보살행을 다 포섭하는 십지보살행도 역시 십바라밀로 묶어서 말할 수 있다.
< 야마천(夜摩天) 4회 4품 >
4회의 4품에서는 《화엄경》의 유심(唯心)설과 보살의 십바라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승의 육바라밀에 사종를 더하여 10이라는 원만수로서 모든 보살행을 나타낸 것이다.
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를 떠나시지 않고서, 야마천궁의 보장엄전(寶莊嚴殿)으로 향하신다. 야마천왕은 궁전 안에 보련화장 사자좌를 만들고 영접한다. 천왕은 불공덕과 야마천궁의 길상함을 게송으로 찬탄한다.
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
친혜(親慧) 세계의 공덕림보살을 위시하여 혜림보살 등의 십대보살과 시방세계 한량없는 보살들이 함께 모여서 온다. 부처님은 발등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셨다. 열분 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게송으로 찬탄한다. 림(林)자 돌림의 보살 등장은 보살의 공덕행이 수풀처럼 쌓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각림보살의 10게송은 유심게(唯心偈)로 알려져 있는데, 마치 화가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다고 하며 마음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다. [6송 -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實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릴 수 있으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겨나서, 법을 만들지 못함이 없도다] 그리고 열 번째 게송의 마지막 구절에 유명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나온다. 일심 또는 유심사상은 《화엄경》의 핵심 내용의 하나이다.
21. 십행품(十行品)
제4회의 중심 품으로서 보살의 열 가지 행을 말한 것이니, 공덕림 보살이 선사유(善思惟)삼매에 들었다 깨어나서 보살의 열 가지 행을 설한다. 10행은 10바라밀에 대응하는 것이다. 10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환희(歡喜)행 -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여 중생을 즐겁게 한다.
②요익(饒益)행 - 지계바라밀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
③무위역(無違逆)행 - 인욕바라밀로 중생을 어기지 않는다.
④무굴요(無屈撓)행 - 정진바라밀로 도에 정진하여 물러나거나 굽히지 않는다.
⑤무치란(無癡亂)행 - 선정바라밀로 정혜가 바르고 밝아서 어리석거나 어지러움이 없다.
⑥선현(善現)행 - 반야바라밀로 경계와 지혜가 밝아서 바르게 나타난다.
⑦무착(無着)행 - 방편바라밀로 중생을 잘 포섭하되 집착이 없다.
⑧난득(難得)행 - 원(願)바라밀로 얻기 어려운 대원을 성취한다.
⑨선법(善法)행 - 역(力)바라밀의 힘으로 참된 법을 설한다.
⑩진실(眞實)행 - 지바라밀로 진실한 행을 이룬다.
이 때 시방세계가 진동하고 무수한 보살들이 와서 공덕림보살을 찬탄한다.
22.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공덕림보살이 열 가지 다함없는 무진장행[신(信)·계(戒)·참(懺)·괴(愧)·문(聞)·시(施)·혜(慧)·염(念)·지(持)·변장(辯藏)]을 설하여 보살들로 하여금 무상보리를 성취케 한다. 여기서 장(藏)은 출생과 함장의 뜻을 겸비하니, 만덕을 포섭함과 묘용을 냄이 다함 없음을 의미한다.
십무진장행으로써 앞에서 말한 십행의 법을 이루어 무진하게 하고, 다음에 이어지는 십회향의 법으로 나아가게 한다.
< 도솔천(兜率天) 5회 3품 >
5회의 주요 내용은 10회향법문이다. 여기서 설주는 금강당(金剛幢)보살이다.
23.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와 야마천궁을 떠나지 않고 도솔천으로 올라가 보배로 장엄한 궁전으로 나아가신다. 도솔천왕은 궁전에 마니장 사자좌를 베풀고 부처님을 영접한다.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금강당보살을 위시한 당(幢) 돌림자의 열 보살이 수많은 보살들과 함께 참례한다. 부처님은 두 무릎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고 십대 보살들이 차례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다. 설주의 이름에서 금강은 굳은 지혜를, 당은 지혜를 바탕으로 한 자비의 깃발을 말한다.
25. 십회향품(十廻向品)
금강당보살이 지광(智光)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 열 가지 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不壞·等一切諸佛·至一切處·無盡功德藏·隨順堅固一切善根·等隨順一切衆生·眞如相·無着無縛解脫·等法界無量廻向]을 설한다. 십회향은 십바라밀의 체가 되는데, 삼처회향으로 묶을 수 있다.
첫째, 대비심을 중생에게 베풀어 교화하기 위하여서는 아래로 중생에게 회향하고[중생회향],
둘째, 위로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보리에 회향하고[보리회향],
셋째, 회향하는 사람이나 이치가 모두 고요함으로 진여의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다.[실제회향]
그리하여 그지없는 수행의 바다로 보현 공덕을 성취하는 일을 말하였다. 십회향은 앞에 말한 십주와 십행을 포함하여 위로는 십지에 올라가는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 십회향은 원(願)의 성격이 강하여 '십회향원'으로도 일컬어진다.
원효대사는 《화엄경》을 주석할 때 <십회향품>까지만 한 뒤에, 절필하고는 중생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원효는 《육십화엄》을 주석하였는데, 이 품의 명칭이 <금강당보살십회향품>으로 되어 있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6회 1품 >
<십지품>에서는 3∼5회에서 살핀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을 통틀어 포섭하는 십지보살행이 시설된다. 이 십지보살행은 화엄이 일승임을 잘 보여 주는 것이며, 십지사상은 인도 대승불교사상의 전개과정과 오늘날 대승불교권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6. 십지품(十地品)
십지법문은 욕계(欲界) 육천의 최상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궁의 마니보장전에서 이루어진다. 설주는 금강장보살인데,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대지혜광명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 십지법문을 설한다. 지(地)는 지혜의 계위를 의미한다.
①환희지(歡喜地) - 십대원을 성취하고 보시바라밀로 기쁨에 넘치는 지위
②이구지(離垢地) - 십선업도를 행하고 지계바라밀로 모든 번뇌의 때를 여의는 지위
③발광지(發光地) - 삼법인을 관하고 인욕바라밀로 지혜의 광명이 빛나는 지위
④염혜지(焰慧地) - 삼십칠조도품을 닦고 정진바라밀로 지혜가 매우 치성하는 지위
⑤난승지(難勝地) - 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이기기 어려운 지위이니, 사성제와 선정바라밀을 주로 닦는다
⑥현전지(現前地) - 세간 출세간의 일체 지혜가 다 나타나는 지위이니, 십이연기를 관하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⑦원행지(遠行地) - 십바라밀을 구족하면서 특히 방편바라밀을 닦아 광대한 진리세계에 이르는 지위
⑧부동지(不動地) - 원바라밀을 닦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동요하지 않는 지위
⑨선혜지(善慧地) - 역바라밀을 닦아 사무애지[法·義·辭·樂說]를 얻어 대법사가 되는 지위
⑩법운지(法雲地) - 위대한 법의 비를 내리는 지위이니 지바라밀이 가장 수승하다.
이 십지의 수행법은 보살 수행의 중심이 된다. 앞에 말한 3회의 수행[십주·십행·십회향]은 3현(賢)이라 하며, 이 십지에 들어가면 비로소 증득하여 과(果)를 이루는 것이다. 본래 한 지위가 모든 지위를 포함하고 한 가지 행에 온갖 행이 갖추어진 보현의 원만융통한 수행의 체계이다.
십지는 이처럼 십바라밀의 차례에 배대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마다 십바라밀행이 구족되어 있어 서로서로 원융한 것으로 이해한다. 결국 보살의 수행은 십바라밀을 구족하고 대비(大悲)를 으뜸으로 삼아 부처님의 지혜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사상에서 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會三歸一)에 바탕한 일승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다.
< 보광명전(寶光明殿) 7회 11품 >
7회의 11품은 십지보살행을 지나 깨달음의 경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화엄경》에 나타나는 깨달음은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을 시설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7회의 앞 10품(27품∼36품)이 등각의 경계이고, 7회 <37. 여래출현품>과 8회 <38. 이세간품>이 묘각의 경계이다. 보살행을 거치는 과위로서의 경계가 등각이라면, 부처님 본래의 깨달음의 세계가 묘각이 되는 것이다. 보살의 깨달음의 경계는 품명에서 그 내용을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27. 십정품(十定品)
제7회 11품의 서론에 해당하며, 지혜의 근본인 열 가지 선정이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이 마가다국의 고요한 법보리 도량에 있는 보광명전에서 찰나제(刹那際)삼매에 들어 여래의 모습을 나타내며 형상이 없는 데 머무르실 때 금강혜보살과 여러 보살들이 모여 왔다. 보안(普眼)보살이 보살들의 부사의하고 광대한 삼매를 부처님께 물었는데 부처님은 보현보살에게 설법하기를 청했고,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 가지 삼매를 말하였다.
십정은 넓은 광명 삼매[普光明大三昧]·묘한 광명[妙光明] 삼매·여러 부처님 국토에 차례로 가는[次第遍往諸佛國土神通] 삼매·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淸淨深心行] 삼매·과거에 장엄을 아는[知過去莊嚴藏] 삼매·지혜 광명의[智光明藏] 삼매·모든 세계 부처님의 장엄을 아는[了知一切世界佛莊嚴] 삼매·일체 중생의 차별 몸[一切衆生差別身] 삼매·법계에 자재한[法界自在] 삼매·걸림 없는 바퀴[無碍輪] 삼매들이다.
28. 십통품(十通品)
선정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보살의 신통을 말한 것이다. 십통은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신통[善知他心智神通]·걸림 없는 시공을 초월하는 눈[無碍天眼智] 신통·전생 일을 아는[知過去際劫宿住智] 신통·내생의 일을 아는[知盡未來際劫智] 신통·걸림 없이 청정하게 중생계 소리를 듣는[無碍淸淨天耳智] 신통·성품도 없고 동작도 없이 모든 세계에 가는[無體性無動作往一切佛刹智] 신통·모든 말을 잘 분별하는[善分別一切言辭智] 신통·수 없는 형상의 몸을 나투는[無數色身智] 신통·모든 법을 아는[一切法智] 신통·모든 법이 다 없어지는 삼매에 들어가는[入一切法滅盡三昧智] 신통이다.
29. 십인품(十忍品)
열 가지 지혜의 경계가 되는 십인을 말한 것이니, 음성인(音聲忍)·순인(順忍)·무생법인(無生法忍)·여환인(如幻忍)·여염인(如焰忍)·여몽인(如夢忍)·여향인(如響忍)·여영인(如影忍)·여화인(如化忍)·여공인(如空忍)이다.
여기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법공지(法空智)로서 일체법이 공하다는 이치를 터득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줄여서 무생인이라고도 하나, 엄밀하게 구분하면 '무생인'은 인공지(人空智)로서 아견(我見)에 의해서 인식되는 인아(人我)는 모두 공하다는 이치를 터득하는 지혜이다. 그리고 '무생법(無生法)'은 남이 없는 법으로서 불생불멸에 대한 깨달음의 지혜를 의미한다.
30. 아승지품(阿僧祗品)
심왕(心王)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일백낙차라는 수를 설하면서 말할 수 없는 제곱을 극수로 하는 큰 수에 대해 설명하신다. 아승지[10의 56승]라는 큰 수가 나온다. 이를 통해서 불·보살의 지혜의 경지가 광대무변하여 무한히 큰 수와 같거나 이보다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31.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심왕보살이 부처님 세계의 수명을 설하는 내용이다. 사바세계인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의 한 겁은 극락세계 아미타불 세계의 하루 낮 하루 밤이라고 하며, 이렇게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의 수명이 다 다르다고 설하신다. 보현보살과 함께 수행하는 큰 보살들이 모두 그 아득한 불세계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이는 무량한 부처님들의 수명은 그 세계의 근기에 따라 장단이 자재하다는 불덕(佛德)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또한 시간적으로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의 경계를 보인 것이다.
32. 제보살주처품(諸菩薩住處品)
심왕보살이 시방의 보살주처를 말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동북방에 청량산(淸凉山)이 있으니 지금 문수사리보살이 그의 권속 일 만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 있으며 법을 연설한다는 것이다. 동방 선인산(仙人山)의 금강승(金剛勝)보살, 서방 금강염산(金剛焰山)의 정진무외행(精進無畏行)보살, 남방 승봉산(勝峰山)의 법혜(法慧)보살, 북방 향적산(香積山)의 향상(香象)보살, 동남방 지제산(支提山)의 천관(天冠)보살, 서남방 광명산(光明山)의 현승(賢勝)보살, 서북방 향풍산(香風山)의 향광(香光)보살, 바다 가운데 금강산(金剛山)의 법기(法起)보살 등이 언급된다.
이 품에 보이는 보살과 그 주처의 명칭들은 오늘날 화엄신앙도량을 추정케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33.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부처님이 청련화장(靑蓮華藏)보살에게 부처님의 국토와 부처님이 닦아서 생기는 과덕(果德)의 불가사의함을 말하게 하였고, 청련화장보살은 부처님의 무량 청정한 몸과 걸림없는 눈과 한량없는 경계와 지혜와 부사의한 삼매와 해탈 등을 말하였다.
34. 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
보현보살이 여래의 거룩한 모습을 말하는 내용이다. 여래의 정수리에는 보배로 장엄한 32가지 거룩한 모습이 있어서 그 가운데에 한량없는 광명 그물이 있어 여러 가지 광명을 놓는다고 하며, 이어서 여래의 눈·코·혀·입·이·어깨·가슴·손·발·발가락까지 각 부위별로 총 97가지를 비롯하여 세계의 티끌 수만큼 거룩한 모습이 있다고 말하였다.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如來隨好光明功德品)
여래에게 갖추어져 있는 잘 생긴 모습의 공덕을 부처님께서 친히 설한 내용이다. 보수(寶手)보살에게 '여래·응공·정등각에 따라서 잘생긴 모습[隨好]이 있으니, 이름은 원만왕(圓滿王)이요, 이 잘생긴 모습에서 큰 광명이 나오니 이름이 치성(熾盛)이라, 7백만 아승지 광명으로 권속을 삼았느니라'고 하며 설을 이어나간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품은 <30. 아승지품>과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뿐이다.
36. 보현행품(普賢行品)
제2회의 <7. 여래명호품>부터 앞의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까지는 차별의 인과를 말한 것이고, 이 품과 아래의 <37. 여래출현품>은 평등한 인과를 설하는 것이다. 이 품에서는 보현보살이 보살의 평등한 인행(因行)을 설하는데, 특히 보살의 성내는 마음을 경계하고 있다.[한 번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100만 가지 장애의 문을 이룬다, 一障一切障] 특히 '일체 중생의 몸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 몸에 들어간다'고 하는 일입일체 일체일입(一入一切 一切一入)의 상입(相入)의 세계가 두드러지게 설해지고 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 :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보현행품>은 아래의 <여래출현품>과 함께 화엄가들에 의해 '법계연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전거로 사용된 것이다.
37.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이 품은 여래가 출현하시는 10가지 상에 대한 성기묘덕보살[=문수보살]의 질문에 보현보살의 대답으로 전개된다. 보현보살은 '여래의 출현법'은 헤아릴 수 없으며 무량한 인연에 의해 출현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어서 '여래의 몸·음성·경계·행·성정각·전법륜·반열반·견문과 친근 선근'을 다양한 비유를 통해 설한다. 앞 품에서 평등한 인을 말한 데 대하여, 이 품에서는 평등한 과를 말한 것이다.
《육십화엄》의 명칭은 <보왕여래성기품>인데, 이는 여래성기(여래출현)의 화엄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화엄성기사상은 법계연기와 함께 화엄사상의 2대 측면이 된다. '법계연기'가 연기의 측면에서 화엄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화엄성기'는 타 교학과 대비되는 사상으로서 화엄과 선(禪)과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고려 보조국사도 <여래출현품>에서 '여래의 지혜는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無處不至의 如來心]'와 '티끌 속에 삼천대천세계의 경권이 있다[微塵經卷喩]'는 구절을 보고 불심(佛心)과 불어(佛語)가 하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법성게 :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이러한 여래심의 여래출현상은 '여래장사상'의 전거가 되며, 지눌의 선교일치[돈오점수(頓悟漸修)의 화엄선 수행]의 근간이 된 것이다.
7회의 11품의 설주로 세존[30·35]과 심왕보살[31·32]과 청련화장보살[33]이 등장하지만 주로 보현보살에 의해 설해지고 있다. 보현보살의 '보현(普賢)'은 덕이 법계에 두루 미치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편적인 행을 의미한다. 화엄에서는 인과가 둘이 아닌 인행이자 과행인 것을 보현행이라는 말로 포괄하여 드러내고 있다.
< 보광명전(寶光明殿) 8회 1품 >
앞의 여러 회에서는 보살의 수행할 여러 계위를 말한 데 대하여, 여기서는 모든 지위를 포섭하여 실제로 수행함을 말하였다.
38. 이세간품(離世間品)
보광명전에 부처님 처소에서 보현보살이 불화엄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난다. 보혜(普慧)보살의 200가지 질문을 받고 보현보살이 한 물음에 각 10가지씩 모두 2000가지의 대답을 한다. 즉, 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 등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일체 보살행을 다시 한번 총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든 보살도를 총괄하면서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계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세간이란 '처염상정(處染常淨)'을 뜻하는 것이니, 동사섭(同事攝)으로 중생계에 있으나 물들지 않는 경계를 말함이며 동시에 연화장 세계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 급고독원(給孤獨園) 9회 1품 >
마지막 <입법계품>은 한 품이지만 분량으로 볼 때 《화엄경》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이 품의 별행경은 다른 화엄부 경전보다 일찍 성립된 것으로 본다. 법본 원본도 <십지품, Dasabhumika(다사부미카)>과 <입법계품, Gandavyuha(간다뷰하)>만이 존재하며, 오늘날 한역으로 남아있는《사십화엄》은 <입법계품>의 별역이다.
39. 입법계품(入法界品)
마지막 <입법계품>은 지금까지 8회의 38품에서 설해진 보살수행의 모든 것을 선재동자라는 한 사람의 수행자가 실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수보살에게서 발심한 선재(善財)동자가 53선지식을 역참하여 보살도를 배우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성취함으로써 법계에 들어간다는 줄거리이다. 이 품에서 선재의 구법 여정이나 선지식들의 갖가지 해탈법문은 화엄의 보살도를 이해하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
경의 구조 상, <입법계품>은 근본법회와 지말법회의 둘로 나눌 수 있다. 근본법회는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의 장엄한 누각에서 사자빈신(獅子斌伸)삼매에 드신 후에 설법하는 내용이다. 보현과 문수를 으뜸으로 하는 오백보살과 오백성문이 청법대중으로 등장하는데, 《화엄경》에서 성문(聲聞, 아라한)이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지말법회는 문수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남쪽으로 인간세계를 향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문수가 선재를 만나 지혜로 불법을 깨달을 수 있는 근기임을 알아보고서, 선재가 발심을 하도록 인도한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이 가르친 대로 남방으로 110성(城)을 지나면서 53선지식을 찾아 각각 묘한 법문을 얻게 된다. 처음 문수보살을 만난 것은 십신을 얻은 것이고, 남방 승락국(勝樂國)의 덕운(德雲)비구를 시작으로 53선지식을 역참하면서 십주·십행·십회향·십지의 법과 등각의 행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에게서 묘각의 법을 성취하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찬탄과 보현의 게송으로 《화엄경》이 마무리된다.
53선지식은 5보살(문수·관음·정취·미륵·보현), 5비구(덕운·해운·선주·해당·선견), 1비구니, 4우바이, 9장자, 2거사, 1천신, 10여신, 1천녀, 2바라문, 1선인, 2왕, 1선생, 3동자, 2동녀, 1뱃사공, 1외도, 1유녀, 1태자비(아쇼다라), 1태자모(마야부인) 등으로 그야말로 각계각층 인물들이다. 이러한 다양하면서도 차별없는 인적구성을 통한 수행경로는 화엄의 일승보살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선지식의 전체에서 여성이 21분이 된다는 점을 통해, 인도불교사에서 대승운동은 사부대중을 포괄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나아가 재가자의 확대 과정에서 우바이의 신심과 경제적인 지원도 주요한 지지기반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겠다.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는 52번째 선지식이 미륵보살인데 미륵은 다시 처음의 문수보살에게 선재를 보내고, 다시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역참하게 된다.[1.문수→52.미륵→문수→53.보현] 이는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화엄경》의 주요사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과가 둘이 아니라는[因果不二] 경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선재가 불과를 성취할 발심을 내는 것은 선근(善根)이 있었기 때문이니, 보살도 수행에서 수행자의 주체적인 자각이 근본적으로 중요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선재동자가 초발심에서 해탈법문을 들었으나 계속하여 선지식들을 만나 수많은 해탈문을 증득하여 불계에 들어가는 구조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화엄일승보살도를 통해 불세계를 장엄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존교단의 혁신을 지향했던 대승보살 운동의 사상적 측면에서 선재나 선지식 모두 여래출현의 존재로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오늘날 대웅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우보처로 지혜의 문수보살과 행원의 보현보살이 모셔지는 것은 화엄 삼신불[청정법신 비로자나불·원만보신 노사나불·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 의미하는 체·상·용의 변용이라고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덕상과 문수와 보현의 지혜와 행원력이 원융회통할 때 일불승과 여래의 온전한 경계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보살도의 실천과 공동체 사회를
《화엄경》은 부처님 정각의 장소를 기점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또다시 지상으로, 이렇게 우주적인 시공초월의 무대로 이동하면서 그 내용이 웅장하게 전개된다. 즉, 깨달음과 보살의 수행과 실천을 주제로 하여 부처의 세계와 그곳에 이르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화엄경》은 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 코탄 부근에서 일군의 대승사(大乘師)들이 교단을 형성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스스로 체화하려는 과정에서, 여러 경전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재조직하고 정비한 대승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크고 넓고 바른 부처님의 공덕과 진리의 장엄한 세계를 교설하는 경전이면서도, 타 경전과는 달리 방편적인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의 진면목을 화엄경을 통해서 더욱 느낄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대방광'은 깨달아야 하는 객관의 대상인 소증지법계(所證智法界)로서, 우주의 대진리인 법의 체·상·용을 가리킨다. 또 '불화엄경'은 깨닫는 주체인 능증지심(能證智心)으로서, 스스로의 마음을 닦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화엄경》에 드러나는 중심 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현상계와 본체,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전개하는 약동적인 큰 생명체인 것이다. 이 연화장세계에서는 절대진리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 대광명을 비추어 모든 묘용을 보이고 있다. 《화엄경》은 우주 질서의 통일적 조화를 상징하고 있다.
둘째, 중중무진(重重無盡)하며 원융평등(圓融平等)한 법계연기사상이다. 법계는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면서 조화를 이루는 세계이다. 화엄학의 근간인 법계연기론은 법계가 곧 연기한 세계라는 뜻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세계와 중생의 존재원리인 연기법을 화엄학의 교리로 조직한 것이다.
셋째, 유심적 세계관으로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게송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통해 표현되는데, 철학적으로 4세기 이후 유식사상(唯識思想)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중생과 그를 둘러싼 세계 전체가 모두 마음의 드러남이기에 부처와 중생이 일체임을 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부처를 초월적인 절대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 스스로 세계의 주체가 된다는 창조적인 세계관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작은 것이 큰 것이며 하나가 일체이다. 《화엄경》에서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이나 시간 등을 독립된 실체로 파악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전체와 끝없이 관련되고 상호작용하며 서로 포함하는 관계로 본다. 즉, 모든 사물과 존재의 통일성과 상호관련성 위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섯째, 첫 마음이 중요하며 시작이 끝이다. 이는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인 수행은 구도의 신앙심을 일으킨 후에 오랜 기간의 수행단계를 거쳐 완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아라한 성자에 오르는 사향사과[四向四果 - 수다원(須陀洹, 預流)·사다함(斯陀含, 一來)·아나함(阿那含, 不還)·아라한(阿羅漢)]와 보살의 52수행 단계(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화엄경》은 깨달음의 발심을 일으킨 최초 계위 이후의 모든 계위를 궁극에 이른 불계와 동등하게 설한다. 이는 초발심의 중요한 의미를 종교적 입장에서 분명하게 제시한 것이다.
《화엄경》이 제시하는 보살 수행의 참다운 길은 대승의 핵심 정신인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바른 길이다. 이는 갈등과 대립과 소외라는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며, 나아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바탕이 되는 공동체정신을 회복하는 소중한 지침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사유와 세계관과 깨달음이 온전히 담겨 있는 《화엄경》을 통해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는 불교의 수행체계를 내면화하면서, 특히 실천의 자세가 무엇보다 소중함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