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로의 山

북한산 원효봉 릿지중 염초봉에서

차화로 2007. 4. 30. 13:50


북한산 원효봉릿지 등반보고서


1. 등반개요

  가. 등반구분 : 한빛알파인 2기본대 월례등반

  나. 등반일시 : 2007. 4. 29

  다. 대상지   : 북한산 원효봉-염초봉-말바위-백운대릿지

  라. 참가인원 : 이형재(대장, 촬영 및 기록), 조남희, 지승만(회계), 강준태

                (이상4명)


2. 운행자료

가. 운행개요

   □ 06:15 남춘천역 출발

    - 08:00 성북역 도착

    - 09:40 북한산 입구 출발

    - 12:00 원효봉 정상 및 식사

    - 12:18 원효봉 출발

    - 13:50 염초봉 정상

    - 15:20 말바위 구간 시작

    - 16:10 백운대 정상

    - 18:10 하산 완료

    - 19:00 도선사 관광시작

    - 19:30 북한산 출발

    - 20:55 청량리역 출발, 22:44 남춘천 도착

   


  나. 운행내용

□조남희님의 원효봉릿지의 제안으로 산행을 기획하면서 아마도 서로가 가지는 부담의 내용이 같았으리라. 전혀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릿지에 들어섰다 할 지라도 앞으로 전개될 지형을 알 수 없다는 막연함. 산행 안내서마다 온통 보기드문 위험 구간의 사진에 북한산의 사고 90%가 원효봉릿지에서 발생한다는 소개. 게다가 조남희님은 저녁에 제사도 치루어야 해서 정체가 심하면 원효봉 까지 갔다가 시간 상황을 보아서 하산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구파발 1번 출구로 나오니 버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가 모두가 등산객 이었다. 달리 기다릴 것 없이 이 방향의 버스는 모두가 북한산 산행 기점으로 향한다고 한다. ‘산성입구’에서 하차하여 곧 원효봉으로 향했다.


□거의 행군하는 행렬과 다름없는 인파, 이 많은 사람들이 원효봉을 향한다니! 산행안내서의 개념도 가지고는 원효봉 들머리를 통 찾을 수 없었다. 방향으로 보아서 이 위치에서는 저 인파를 따라가면 안 될 터인데 하며 머뭇거릴 즈음 릿지로 향하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을 하고 계곡을 건너는 들머리에서 장비를 착용했다. 인터넷에서 원효봉 릿지의 검색을 해보면 백운대로 향하는 수 많은 루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적당히 바위를 경험하며 장비가 불필요한 일반 등산로 부터, 입문자용, 중급자용, 도사용 등등.


□숲 사이를 얼마간 지나니 수시로 슬랩이 나타타고 이어서 50m가 넘는 긴 슬랩이 있었다. 출발전에 우리가 원칙으로 서로 다짐한 것은 *누가 뭐래도 남들이 답답히 여기리라 할 정도로 안자일렌 하자* 였다. 그러나 이 슬랩들은 까칠한 화강암의 완경사 이어서 안자일렌이 필요치 않았다. 두 발로 오르다가 필요하면 3점 지지를 하며 때로는 바로 위로 향하거나 아니면 크랙을 따라 사선으로, 혹은 슬랩을 가로 질렀다. 이어서 얼마간 여러 상황의 릿지를 오르니 약 30m정도의 경사가 심한 슬랩이 나왔다. 약 20명 정도의 인원이 차례를 기다리며 등반 하고 있었다. 10분정도 기다리는데 통 진도가 나질 않았다. 그 팀의 리더가 하는 말이 모두가 통과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모른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다른길을 찾으려고 지나치니  또다른 슬랩이 나타났다. 장비없는 인파는 여기도 지나치고 쉬워 보이는 길로 떠들썩 통과하고 있었다.

조남희님의 선등과 확보로 이형재, 강성태, 지승만 순서로 올랐다.

이어서 여러 형태의 다양한 릿지를 지나 원효봉 정상에 도착했다. 서울의 한편이 펼쳐지고 인수봉, 염초봉, 백운대, 망경대, 의상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성의 일반등산로에서 이어지는 원효봉엔 많은 관광인파가 계속 드나들며 북적대고있었다.


□산성에서 약 20분의 점심식사 시간과 주변 조망하는 시간을 가지고 염초봉을 향하였다. 북문과 산성을 지나 다양한 형태의 암릉을 지나니 긴 슬랩이 나왔고 본격적으로 위험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국립공원 안전관리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안전에 관한 숙지와 안전장비 착용의 권고, 위험구간의 내용 일러주기 등등 안전관리가 그의 업무 인가 보다. 비록 말로 전해듣는 길의 모습과 통과 방법이지만 전혀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때로 마주치는 여류등반가들의 등반방법에 감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세한 홀드와 스탠드를 자세히 알고 있었고 잡을 데가 없을 때, 뒤에서 ‘여긴 언더 홀드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손을 넣어보세요’ 하는 조언에 손을 넣어보면 확실한 홀드가 잡혔던 것이다. 난이도가 높은 지역을 손쉽게 오르거나 클라이밍다운 하며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홀드와 스탠드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이 구간 통과도 만만치 않았다. 평탄한 우회길도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는 암릉 정수리에서 종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피톤에 자일을 걸고 하강하고 때로는 안자일렌 확보로 오르다가 어느 우회 진입로에서 운동량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승만님이 ‘운동을 많이 하시는 가 봅니다’ 하고 말을 건네니, 그의 대답은 마치 어느 경지를 말하듯 ‘말바위만 10년 했습니다’ 이었다. 말바위 라니. 우리는 바로 그 말바위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즈음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두 老 山客이 있었다.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이 산객은 얼굴이 맑은 학자출신의 CEO로 보였다.

그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북한산 솔로 릿지꾼’ 혹은 ‘릿지도사’였던 것이다.

80년대부터 북한산 도봉산릿지의 구석구석 샅샅이 다녔는데 말바위를 마스터 하는데 꼬박 일년 걸렸다고 하며, 자일은 다룰 줄 모른다고 한다.

이 두분의 도움으로 난관을 돌파해 나아가는데, 돌파 방법이 거의 손금보듯 했고 때로는 자세와 방법을 세세히 일러 주었다. 어쩌면 이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뒤로 돌아서 우회로로 탈출해야 했음이 자명하다.

말바위는 10m정도의 너럭바위 위에 약간 오버행의 2.5m크랙이 있고 오른쪽 모서리는 각이져서 아래는 수직 절벽이고 왼쪽은 완경사면 이지만 맨질맨질 해서 매우 미끄러웠다. 이 끝 크랙 아래에서 후등자 확보를 할 지라도 자기확보 할 아무 지점도 없다. 이렇게 염초-말바위-백운 구간에 자기 확보지점 없이 후등자 확보해야 하는 곳이 몇몇곳이 있었다.

□이 분들에게 배운 몇가지를 적어보면 이 말바위 상황에서,


*직벽크랙의 오른쪽 발을 허리 이상 높이의 스탠드에 딛기 위해서는 크랙에 두 손을 넣어 몸을 솟구치며 왼쪽으로 몸을 쏠리도록 당기며 왼발로 바위를 밀어냄과 동시에 오른발을 딛을 공간을 만들어 오른발을 딛고 몸을 세워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손을 뻗으면 홀드가 잡힌다.(우리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고추세우는 것이 균형 인줄 알고 시도했으나 좌 우의 쏠림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위험지대에서 긴장하면 두 발의 간격이 좁혀 지거나 몸이 옹크려지기 쉽상인데 그럴수록 두 발의 간격은 생각보다 넓게, 때로는 균형을 위해 바깥쪽에을 밀어내듯 딛으며 몸을 움츠리지 말아야 한다.

*일반 워킹등산 시에도 릿지 등반의 연습이 되어야 한다. 즉, 고도감이 높은

바위 끝이라 생각하고 몸의 균형과 밸런스를 항상 유지하는 훈련을 한다.

□2006년 카페 게시물에 어느 산악인의 산악문화에 관한 제언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우리는 북한산에 등반을 하다보면 암릉길에서 곡예를 부리듯 아무런 안전장구를 갖추지 않은 채 오르내리는 행위를 종종 볼수 있다. 등반을 잘하는구나 생각하면서도 “저기서 떨어지면 큰일날덴데 위험해”하며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걱정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일명 “북한산 다람쥐” 또는 “도봉산다람쥐“라 일켜는 이분들은 80년중반에 계속해서 이어져오는 솔로 릿지꾼들이다. 혼자 쌕을 하나 메고 릿지암릉길만 찾아다니며 등반을 즐기던 이들, 암릉길의 돌부리하나 바위의 생김하나 세세히 알고 있고 눈감고 다닐수 있을 정도 홀드(암벽등반 손과 발을 딛어 오르수 있는 곳)를 외우고 다녔던 산꾼들이다. (중략)

다람쥐 릿지꾼들의 자기도취형식 산행이랄가 이런 암릉릿지 산행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잘못된 산행방식이 시간이지나며  정상적인 듯한 등반형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오히려 “암릉길에서 안자일렌(암릉 릿지등반시 장비를 이용한 안전활동)으로 등반을 받드시 해야한다”고 말하면 적반하장 겪으로 바보취급 당하는 아주 잘못된 산행습관으로 만연되여 있다.

그 당시엔 전문등반을 하던 산악회는 안자일렌의 중요성 인식하고 암릉길에서 후배에게 교육하고 수평적 암벽등반이라며 반복적인 연습등반을 하였다. 필연적으로 꼭 습득하여야만 되는 등반기술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찾지하고 있던 안자일렌 있기 때문에 전문등산학교에서는 이 과목에 충실하였던 것도 기억이난다. (중략)

그렇게 전문산악회 안자일렌으로 3-4명이 등반하면, 일명 다람쥐 릿지꾼을 릿지상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서로 목례로 인사는 하고 지나가지만 전문 산악인은 단독등반을 하는 꾼에게 안전의식 결려됨을 걱정하고, 반대로 릿지꾼은 전문인들에게 부담스럽게 이 쉬운길을 자일을 엮어가나 측은하게 생각하고 서로의 관념적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걱정을 하면 등반을 할 때 암릉길에서  솔로릿지꾼들이 눈감고 다닐수 있는 그런 코스에서 단 한순간에 실수로 한사람 두사람 유명을 달리하는 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등반의 교훈적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중략)

북한산릿지상에 안전사고는 점점 늘어나 2004년에는 13여명이 등반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고 30여명이 부상자가 속출하였던 통계에서 말해주며, 6월에 북한산 숨은벽릿지길에서 또 한사람이 죽였다는 언론에 접할 때 무언가는 잘못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주말 북한산에는 3만여명이 산을 덮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지만 암릉길에서 안자일렌 등반방식으로 안전한 산행하는 팀은 별로 없으니 앞으로 계속해서 죽음에 이르는 대형 안전사고는 일어날 것을 물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전문산악인들은 반성하여야한다. 이렇게 산행질서와 예절이 무너지고 안전의식마저 떨어진 것은 전문인들이 바른 산문화를 이끌어 가는데 방관하였다는 것이다.   

인수, 선인에서 오름내림 등반형태에서 잔기술을 의존하기보다는 포괄적인 등반을 여러 형태의 훈련을 쌓아 나아가 등반의 표상이 되고, 기준이되도록 다각적인 노력 필요하며, 앞으로 한국의 산악문화를 내가 책임진다는 사명의식 또한 스스로 다짐하여 실천되어야한다.

안자일렌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의 제안인데, 바로 그 북한산 릿지도사님 들은 돌부리 하나하나와 바위의 생김생김과 홀드를 눈감고도 외울 수 있으실 것 같다. 우리 일행에게 ‘우리는 언제고 기본에 충실히 안자일렌 하도록 하자’ 했더니 지승만님은 크게 공감하는 듯 하고 조남희 님은 릿지도사의 스타일에 구미가 당기는 듯 보였다.

老子의 熟術爲道가 떠 올랐다.  -術(재주 기술 기예)가 익으면 道가 된다-


□드디어 백운대가 보이는 마지막 구간. 릿지도사님 들은 내게, 한 사람에겐 후일을 위해 길을 알려 주고 싶다며 다른 사람은 바로 백운대로 향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그래서 조남희님이 도사님을 따라갔는데 우리가 상의하는 내용을 듣지못한 두 사람도 따라 나섰다.

확실한 홀드와 스탠드를 세세히 알려주며 발을 바쳐주기도 해서 자일 확보로 못 오를 이유 없지만 나는 이 구간을 지나쳐 하강지점에서 대원들을 촬영하기로 했다. 과연, 이분들은 아무 안전장치 없이 뒷꿈치에 눈이 있는 듯 클라이밍다운으로 하강했고 하강후에는 한 분은 아래에서 한 분은 위에서 홀드와 상황에 맞는 자세를 지도해 주셨다. 우리는 당연히 암각에 자일을 걸고 확보상태에서 클라이밍다운 지도를 받았다.


□백운대 정상에서. 一望無際에 두터운 바위는 깊이에 깊이를 더했고 능선을 이은 봉우리마다 그 威容과 姿態를 지키고 있었다.

넉넉하게 여유로운 휴식시간을 가지고난 후 위문을 경유, 도선사 방향으로 하산해서 주차장에서 동동주 한잔 하며 산행의 회포를 나누고 도선사 境內를 관람했다.


□청량리역 남춘천행 기차에서 한 숨 자고나니 강촌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등반을 하고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어디가고 어찌하여 아름다움이 크게 남는 것일까?

                                                   이상 기록, 이형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