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관련 문헌

바쁜 현대 속에 생활의 여백찾는 조각가 이형재 -춘천정론

차화로 2004. 11. 16. 12:36
 

봄내골 사람


                                춘천정론 (1991년 9월 30일) 안 영 숙 기자


그는 한복을 입고 나닌다. 한국 사람이 한복을 입고 다님이 결코 기이할 것이 없으나 이상하게 보는 것이 현 세태 이다.

조각가 여산 이형재. 그는 여름에는 하얀 모시적삼, 요즘같이 사소 선선한 계절에는 두루마기도 걸치고 여유롭게 다닌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현대인이 무엇이든 바쁘게, 빨리빨리 하려는 것을 그는 현대인이 가진 일종의 습관이라고 여긴다. 잠시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허전하고 그래서 몸이라도 꿈틀댄다. 그의 말처럼 마음속의 여유와 여백을 가져보지 못한 채 그저 습관처럼 바쁜 것인지도 모른다.

“한복을 왜 입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대부분 그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묻곤 하지요.”

사람들은 그에게 한복을 입는 이유를 자주 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선입견을 갖고 물어온다. 대학 선거때는 민중운동가 일거다, 혹은 저항시인은 아닐까? 아마 사이비종교가 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의 대답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다. 그저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일 뿐.

그는 대학시절부터 禪,명상, 동양학문과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조각에 있어서도 내면의 문제에 눈을 일찌감치 돌렸다. 기존의 형태소, 추상적 형태를 표현한 작품에 그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관을 통해서 정신세계의 문제를 다루고 싶어서 정신세계와 생명력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계속 하였고 그래서 그러한 작품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것이 ‘始原에서의 통합’이라는 89년 그의 개인전이었다.

그는 이 전시회에서 끝과 시작이 병존한다는 것, 씨앗, 발아, 싹, 낙엽, 씨앗 그자체등 생장과정을 통한 꿈틀거리는 생명의 힘을 표현하고 싶었다.

작품구상을 위해, 혹은 그저 이끌려서 아무튼 한달에 수차례 씩 여행을 다니는 그의 집을 방문하는 이들은 평균 30~40명. 그들은 소꼽친구도 아니고, 학교 동기동창도 아니라 그에게 특별한 볼일이 있었던 것도 어 더욱 아니다. 그들은 먼 곳에서 혹은 가까이서 슬그머니 찾아와서는 그나 내놓은 녹차 한잔을 기울이곤 훌쩍 떠난다.

그와 우려낸 차는 유난히 담백하고 그윽하다고들 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다도(茶道)’로 그의 지기들에게 알려져 왔다.

“茶라면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정겹게 마시는 차, 생활속에서 익숙하게 마시는 차, 그리고 자신을 수양하는 수단으로의 차가 있지요”

茶道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차를 마시면 차를 알게되고, 차를 알면 차를 마시게 된다’는 다도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茶禮’라고 하는 형식에 대해서 그는 형식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차는 마시는 사람이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함이 중요합니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차를 즐긴다는 것이지요. 차를 낼때 물을 끓이는 정성, 그 물을 뜸을 들여 차를 우려내어서 공양하는 방법,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겸손하게 차를 마시는 것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일상생활과 잇닿아 있지요.”

茶禮가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생활예절임을 그는 강조한다. 현재 갖추어진 차의 형식은 70년대 차생활 부흥운동시에 현대 차문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전통형식에 남아있는 것들 즉, 차례, 불가에서의 다공양, 등 그 형식을 추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저를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이 모두 춘천같은 이런 환경에 살면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고 해요. 한번 다녀가신 분들은 춘천에 향수를 지니고 계신 듯 해요.”

그는 춘천에 찾아온 그의 지기들에게 언제나 막국수 한 그릇, 닭갈비 그리고 푸짐한 춘천에 대한 얘깃거리를 선사한다.

현재 한국미술청년작가회와 한국미술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많을 때는 한해에 무려 20여 작품을 만들기도 했으나 90년 이후에는 한해에 6작품 정도. 습관적 작품이 되고 싶지 않은 그의 강한 소망 때문이다. 늘 다정한 말동무가 되어 주는 아내 정지인씨도 묵촌회와 예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깨끗한 한복을 나부끼며 춘천의 거리를 늘 여유롭게 거닐며 생활속의 여유, 생활속의 茶道, 참 생명력을 지닌 작품에 혼신의 정열을 쏟는 조각가 여산 이형재씨 또한 우리와 함께 소양강의 새벽안개를 들이마시고 봉의산의 아침 햇살을 하께 나누는 우리네 봄내골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