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신 종 원
내가 추천사를 쓰는 것은 미술에 문외한인 한 시민이 작가를 좋아해서, 그가 전시회를 한다기에
아이들처럼 마냥 좋아서 써보는 것 뿐이다.
내가 겸로선생을 안지도 20년이 넘었다. 처음 그를 만난 느낌은 참 온화하다는 것, 그를 알아두면
인생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그게 사실로 드러났음은 내가 직장관계로 춘천을
떠난 뒤에도 계속 만나고 있으니 예감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나보다.
겸로선생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도인이다. 삶 전체가 그렇고, 지금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마도 작품활동도 그 수행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과연 그의 작품에는 우주의 원리라든가 만물이
서로 관계를 이루는 인연 그러한 것을 적절히 표현하여, 그림을 모르는 내가 봐도 겸노선생의
설법을 듣는 것 같다.
산, 강, 나무가 서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장엄한 화엄세계를 그는 이번에 연출하였다. 나뭇잎이
곧 부처요, 세상 모두가 있는 그대로 부처다! 나는 작품을 보는 순간 어느새 합장을 할 뻔하였다.
미술비평의 안목에서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위의 칭송이 겸로선생에 대한 모두이다. 나는 마음으로만,
말로만 겸로선생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내가 대학박물관장을 맡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작품을 애써 구하였다. 그때의 마음은, 지금은 현대작가 이형재이지만 앞으로
100년 1000년이 가면 그의 작품은 보물같은 존재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화로 이형재는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그의 목소리는 원래 청아하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는 가히 성악가 수준이다. 자신의 말로 음악 듣기를
즐겨하여 귀에 음악이 묻어 있어서라 한다.
그는 또 등산에 심취하여 있다. 그 수준이 보통이 아니어서 소위 클라이밍을 하는데, 최근에 나는
이 일로 자주 만나 여러 가지 기술지도를 받는다.
차를 끓이는 그릇이 ‘차화로’이듯이 그는 茶人이다. 그가 차를 음미하는 경지는 심지어 그집 犬公까지
차를 즐겼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는 풍치좋은 야외로 나가면 어김없이 차를 달인다. 신라의 화랑들처럼.
이 모든 재주와 자산이 어우러지고 더욱 완숙하여 세계가 알아주는 겸로, 차화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겸손한 태도나 구도적 자세로 보아 그리 힘든 일도 아니라고 본다.
다시 한번 겸로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