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로의 제 7회 개인전에
한국화가,수필가 우안 최영식
山같은 사람
조각가 이형재의 처음 아호는 여산 이었다. 우선 체구부터가 작지 않은데다가 몸무게가 육중해서
산 하나를 마주하고 있는 듯 한 첫 인상을 주었다. 과묵함 까지 곁들여져 그의 산 닮음은 아호와 잘
어울렸다. 지금은 예전의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몰라볼 정도로 날씬해진 체구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닌 산 닮은 본성이 어디로 갈 것인가.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옛 어른들은
말했다. 산을 즐기는 자는 어질며 물을 즐기는 자는 지혜롭다고 그 성품을 일렀는데 어짐을 가진
사람이 그다. 산악을 앞에 하는 우람함이 아니요 부드러움을 지닌 듬직함이 뒷동산의 정다움처럼
다가온다.
그런 성향은 초창기 작품들인 생장 시리즈에서부터 유감없이 보여진다. 전래의 새끼줄을 소재로
삼은 조각은 곡선이 끊임없이 변화를 이뤄낸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특징은 토속적이고 부드러움이며
그 안에 힘이 내재된 원융을 향한 추구였다. 꿈틀대던 형상들이 나중에 일원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작품성을 꿰뚫어 본 심사위원들이 한국미술청년작가대상 우수상을 받는 영광을 주기도
했으리라. 서구적인 조각세계가 아닌 우리 것에 시선을 두고 소재로 삼으며 아름다움을 찾는 그의
작가정신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소재가 확대되고 재료가 다양화되며 깊어지는
과정에 있다.
어느 때 부터인가 그는 겸로(謙爐)라는 아호를 쓰고 있다. 다도와 가까이 한 시간이 오래되니
당연하고 잘 어울린다.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깊어지며 저절로 겸허의 세계로 가고 있다는 지향점이
보인다. 그는 다도인들 에게 잘 알려져 있다. 겉멋으로 하는 다도가 아니라 생활 속에 뿌리내린
속 멋이 배어나는 다인 이다. 언젠가 겸로와 며칠간 여행을 하는 중에 내설악 옥녀탕과 정선의
몰운대 계곡에서 그가 준비한 다구를 제대로 갖춘 차를 우려 마신 적이 있었다. 계류의 맑은 물을
끓여 다관에 우려내고 찻잔에 마시는 그윽한 차 맛이라니 아마도 내 생애에 마셔본 차 중에서 가장
훌륭했었다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런 체험을 통해 옛 다인들의 풍류와 마음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다반사라는 말을 쓰는데 차 마시고 밥 먹듯이 라는 의미에서 차는 이미 생활
속에서 멀어져 있는 상황인데 그에게는 명실이 상부한 용어로 살아있는 셈이다. 옥녀탕에서
스케치를 하고 차를 마신 후 나오다가 관광버스 한 대가 와 섰고 주로 노인들인 관광객이 옥녀탕을
둘러 봤는데 그들이 버스에 다 타자 겸로가 버스에 올라 가곡을 자청해 불러주는 광경을 지켜
보았다. 그의 부전공이 성악이라고 해도 될만큼 노래부르기를 즐긴다. 어르신들은 의외의 노래
선물에 박수로 답례했음은 물론이다. 곡명이 박연폭포였던걸로 기억한다.
어찌보면 기행이라고 할 터인데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 음대를
지망할 생각까지도 한 걸로 안다. 음악계에서는 아까운 인재 한 명을 잃은걸 알기나 하는지.
미술계로선 그가 성악을 안하고 미술을 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잘 놀 줄 아는 사람
83년에 미대를 졸업하고 84년에 공모전을 통해 수상하며 화단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어느덧
20년의 연륜이 쌓였다. 그동안 7회의 개인전을 가지며 자신의 길을 꾸준히 다지고 심화시키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와 알아 가는 것도 그의 화단입문과 거의궤를 같이한다.
그의 살아가는 모습과 작가로서의 세계를 가까이서 보았다고 할 것이다. 제자 중 한명이 그와
결혼을 했기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변함 없는 속에서도 성장하는 자세는
나무와 닮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보인다. 한결같음 속에 물 흐르듯이, 나무가 자라며 커가듯이,
뿌리는 더욱 깊게 내리고 튼튼한 형태를 갖추듯이 그는 현란한 변화가 아닌 잔잔함 속에 일관된
변화의 길을 걸어 왔다고 여겨진다.
그의 성품은 고요함을 가까이 하고 동양의 지혜와 정신을 함양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자세 속에
들어있다. 그렇기에 다도를 생활 속에 구현하며 한시도 짓고 새끼줄이며, 금강역사상, 강, 나무,
빛, 비, 산 들을 조각으로 빚어내는 작업을 쉬임없이 해오는 것일 터이다. 5회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들의 명제를 보면 그의 정신의 편린이 보인다. ‘빛을 지닌이’ ‘영원의 언덕’ ‘언덕-저녁 무렵’
‘뜬 구름이 일어나고 뜬 구름이 사라지다’ ‘언덕-지평’ ‘빛 -그대로’등 대체로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으며 목조가 많이 나왔다. 6회 개인전에서는 ‘영원의 문’ ‘빛으로 가득한 본래 모습의
산’ ‘강- 지류’ ‘빛의 폭포’ ‘빛의 언덕’ ‘강 이미지 나무’ ‘금강문’ ‘빛의 강’ ‘빛 그대로 어른거림’등
5회전에서 더욱 나아간 변화와 깊이가 느껴진다. 강을 나무의 둥치와 가지로 병치시키는 발상은
신선하다. 그가 심취해온 불교의세계관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으며 추상과 구상이 혼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잘 놀 줄 아는 사람이라고 소제목을 달았다. 여기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잘 논다는
것은 유어예(遊於藝)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 놀 줄을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급한 문화가 대중문화라는 탈을 쓰고 만연하지만 시끌벅적해야 노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잘 놓여있는 것이 잘 노는 것이란 지론을 가지고 있기에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만
있다 해도 즐기고 있다면 그건 잘 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겸로는 그런 의미에서 잘 놀 줄 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차를 마시고 노래를 하며 산을 찾아 오르는 생활이 진정한 의미에서 얼마나
잘 노는 것인가. 그의 작품들도 치열하다기 보다는 노는 속에서 나온 것들로 보여지는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대범하고 덤덤한 무위의 손놀림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아직은 젊기에 그 점이
아쉬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기 만성의 길을 걸으며
이번 7회 개인전은 조각이 아닌 산을 소재로 한 수채화로 가지는 것이다. 그가 산을 찾으며
현장에서 그려진 터라 소품이기도 하다. 가평 운악산, 청도 주왕산, 구절산, 태백의 태백산, 철원의
명성산, 양양의 삼태기 마을, 하조대, 춘천의 오봉산, 삼악산, 용화산, 봉의산과 산에서 바라본
호수들이 그려지고 있다. 원주 감영 내에 있는 사천왕상과 삼악산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돌탑도 나온다. 미미와 예삐라는 이름을 가진 애완견을 그린 것도 있는데 그에게 애완견은 당당한
식구의 일원이다. 자녀를 두고 있지 않기에 애완견이 그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처럼 대하듯 똑 같은 대접과 사랑을 받으니 그들도 사람인줄 착각하고 살 것이다.
그의 수채화들도 조각이 그랬듯이 기교보다는 잘 우려낸 차맛처럼 담담하고 은근하고 맑고
대범하다. 서양화라기 보다는 한국화적인 분위기가 더 많이 풍긴다. 구도가 그렇고 여백들이
또한 그러하며 수묵화적인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수채화가들이 보여주는 요소가 아닌 그만의
시각이 거기엔 있기 때문이다. 산을 자주 접하고 오르며 사는 겸로 만이 바라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펼쳐지기에 편안함으로 그의 수채화들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두서없고 무딘 필치로 겸로를 말한 다는게 곤혹 스러웠다. 그의 정신의 광맥은 얼마나 깊고도
넓은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만성형 이라고 여겨지는 그의 도정은 단순히 조각가라고 말하기엔 그의 지닌 세계가 울창한
숲과 계곡마다 청류가 흐르는 산처럼 많은 것을 그의 가슴속에 품고 기르며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단면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다행으로 여긴다.
바라건대, 겸로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양분을 밑거름 삼아 완성도를 높여가는 자세를 견지하길
그리하여 그의 예술세계가 큰 봉우리로 우뚝 솟아올라 한국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작가로 남기를
기대하면서 이번 개인전이 더한층 분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