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로 이형재의 개인전
시인, A&C디자인연구소장 황 빈
길을 나서다
트렁크에서 전시할 작품을 꺼냈을 때, 아스팔트의 열기는 불온한 언어처럼 식도를 타고 들었다. 그런 아스팔트를 시를 쓰는 한 선배는 ‘이디아민’같다고 했다.
적도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우간다처럼 팔월 초입의 여름 한낮은 사람들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 가로수들도 힘에 겨운 듯 푸른 숨을 겨우겨우 토해내고 있었고 우리는 만만치 않은 무게의 브론즈를 맞들고 계단을 올랐다.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을 이렇게 옮겨본 지가 언제인가. 아니 이렇게 손을 대고 느껴본 지가 언젠가. 대학 미술실기실과 강릉의 작업실에서 크고 작은 흙작업과 석고들, 폴리코트의 인물상들을 옮겨주는 노역들은 謙爐 이형재를 기억하는 즐거운 단초가 된다. 모색의 시간들을 함께 공유했던 옛날의 궤적은 아스라하다.
강릉역에서 어두운 화부산의 길을 걸으며 삶은 어디까지 진실한가에 대해서 막막한 가슴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강문 앞바다는 속살을 내밀던 그 시절처럼 이제 그는 산을 찾아 나선다. 또다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만나기 위해.
작은 그릇들처럼
아이들은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 크지않은 화실임에도 에어컨은 마치 제 기능을 망각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듯 했다. 이번 개인전에 전시될 작품들이 이젤 사이로 보인다. 지난 개인전 때의 연장선에 잇는 작품들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듯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조형들은 원형(圓形)의 메시지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작가의 심미안과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교감하는 공유의 산처럼 느껴진다. 나무의 옹이와 ‘미미’ 의 둥글게 말린 꼬리, 곳곳의 작품 속에서 쉽게 만나는 그 원형은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생명의 발원지는 산과 강이며 그 안에서 만나는 나무와 숲, 숲을 밝히는 빛과 산을 휘감고 도는 물이 이미지가 아이들의 맑은 눈처럼 빛나고 있다.
자식처럼 끔찍이 보듬었던 ‘미미’와 ‘예삐’처럼 탄생과 소멸을 거듭함이 주는 자연의 질서를 담아내고 있다. 스케치북에 느껴지는 대로 그려대는 저 아이들의 눈처럼, 저 작은 그릇들처럼.
녹차 칼국수
새로 이사했다는 아파트는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웠다. 춘천의 높지 않는 산들이 둘러져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맛이 있다. 바로 눈 앞의 작은 산을 매일 오른다며 겸로(謙爐)이형재는 연신 홍두깨를 굴려가며 반죽을 넓혀 갔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와 교유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의 작은 손이다. 나와 한 쌍의 예비부부를 위해 녹차칼국수를 준비하는 그의 손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형태를 이뤄가는 칼국수의 원형은 곧이어 담백한 맛으로 전해질 것이다. 그렇다. 謙爐 이형재는 맛있는 사람이다. 茶를 내는 손은 물론이요 별스러울 것도 없는 술 따름에도 그의 손이 닿으면 맛이 있다.
그것은 드로잉이나 수채화, 유화, 조각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나는 한번도 그가 작품에대해 고민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렇다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능금이 익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때가 이르면 그는 잘익은 는금을 딸 뿐이다. 가슴속에 품은 주제와 표출하고자 하는 형상을 우리 앞에 조용히 내어 놓는다.
끊임없이 용융하는 용광로처럼, 방 안의 온기를 은근하게 전해주는 화로처럼, 찻잔에 고여있는 녹차처럼, 맛있게 끓고 있는 저 칼국수처럼 기다렸다가.
미인과 생맥주
아름다운 사람이 버티고 있다는 술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줄곧 생각했다. 한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시각은 어떠한 집단적 연대를 통해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일까? 체득한 경험과 감성이든 잠재된 의식의 공간과 우연히 합류되어 동일한 공감대를 이룬다면 그 작품은 성공한 것일까?
눈을 뜨고 앞을 보니 산이 하나 있었다. 택시 앞쪽에 자리한 謙爐 이형재는 말없이 길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그 안에 빛과 물을 이끌어 산과 강을 키우는 단아한 자연이다.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산은 저마다 갖출 것은 다 지니고 있다. 어떻게 길이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줄 것인가는 그 山만의 역할이다. 포장되지 않은 산길은 언제 걸어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우리는 謙爐 이형재가 만든 길 위에 서 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걸어가면 그가 가꾼 숨쉬는 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주인은 꾸밈이 없는 미인이었다. 살균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맥주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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