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 전날 야영하며 도란도란 소주한순배 돌아가고 안부님이 ‘산은 인간인가? 자연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 저는 ‘산은 생명 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지하의 생명론인가?’ 라는 물음이 있었는데 사실 김지하의 생명론을 접해보지 못했니다. 다만 단편적으로 신문지상에 가끔 기사로 보았을 뿐이지요. 연기론에 의거한 실상을 말했을 뿐입니다. ‘연기론’에서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고 하는데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서로 상즉상입한다는 내용입니다. 조선시대 김대현의 술몽쇄언에서는 눈에 보이는 생명에 대하여
겨울의 꿩은 기름지고 윤택하며, 봄철의 준치는 달고 아름답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천지가 생물을 길러 사람을 供饋 한다고 하면서 새와 짐승으로 때를 따라 반찬을 삼는다. 죽이고 베고 삶고 지지는 것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를 않는다. 저 뭇 생명들은 모두가 동일한 性에서 태어난 것이며, 같은 천지의 포태 속에서 나온 동포 형제 들이다. 모두 理와 氣를 품부 받고 있다. 비록 감정과 지혜의 다름과 업력의 변화로서 각각 제 특유의 성명을 받았기 때문에 품류가 같지 않기는 하지만, 모두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심정은 같다.
모기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 사람의 피와 살이 어찌 저것들을 기르기 위하여 때를 따라 살찌는 것이겠는가. 저 생명들의 형체가 비록 크고 작음이 있으나 제각기 性命이 있으며,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귀중히 여긴다. 괴로움을 알고 아픔을 안다. 어미와 새끼의 애정이 있고 암컷과 수컷의 정이 있다. 서로 함께 다니는 것을 즐겨하고 서로 따로 헤어지는 것을 슬퍼한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한때의 식사를 위해 몇 생물들의 슬픔을 만들었으며, 두 젓가락 사이에 몇 생물들의 사랑이 이별을 당하게 되었는가. 그 새끼를 죽이면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지고, 수컷을 삶으면 암컷이 그 솥에 몸을 던진다. 그 눈동자를 굴리며 굴리며 곁눈으로 보는 모습은 슬픈 정이 마치 살려달라고 바라는 빛이며 그 영성이 막히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측은하게 여기는 어진 마음이 어디에 있고 미물에 미치는 의로움이 어디에 있는가.
생명의 연관을 더욱 확장시켜 나아가는 어느 수필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종이 안에는 떠 있는 구름을 볼 수 있다. 구름이 없으면 비도 없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다. 결국 종이에게 있어서 구름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만일 구름이 이곳에 없다면, 종이 또한 이곳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구름과 종이가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종이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햇빛을 볼 수 있다. 햇빛이 없으면 숲은 자라날 수 없다. 햇빛이 없으면 우리 또한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햇빛 역시 이 종이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종이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나무를 베어내 제지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벌목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쌀도 볼 수 있다. 우리는 벌목꾼이 매일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밥의 원료인 쌀 또한 이 종이 안에 들어있다.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자신 역시 이 종이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종이를 볼 때 종이는 우리 인식의 일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이 여기 있고 내 마음 또한 여기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이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 공간, 대지, 비, 흙 속에 있는 광물질, 햇빛, 구름, 강, 온기가 모두 여기 있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때 나는 내가 전생에 구름이었음을 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과학이다. 나는 왜 내가 전생에 구름이었다고 말하는가? 나는 지금도 구름이기 때문이다.
구름이 없다면 나는 여기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구름이고 강이고 공기다. 따라서 나는 과거에 내가 구름이고 강이고 공기였음을 안다. 그리고 바위였다. 나는 물속의 광물질이었다.
이것은 환생에 대한 믿음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지구에서 펼쳐진 생명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때 가스, 햇빛, 물 세균, 식물이었다. 우리는 한때 단세포 동물이었다. 붓다는 자신의 전생 중에는 나무였던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고기였다. 그는 사슴이었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대지를 연결시켜주는 수많은 줄기들을 갖고 있다. 우리를 우주의 모든 것과 연결시켜 주는 수십만개의 끈이 존재한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할 수 있다.
우주에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없는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 밑바닥에 놓인 작은 조약돌에서부터 수백억 광년 떨어진 은하계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우리와 관계되어 있다.
시인 휘트먼은 말했다.
“나는 별들의 운행 못지 않게 풀잎 하나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철학적인 말이 아니다. 그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그는 또 말했다.
“나는 커다란 존재이다. 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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