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관련 자료

[스크랩] 푸어차의 종류 - 보이차 (12)...(각종 보이차의 사진과 설명)

차화로 2005. 2. 15. 19:09



홍연원차(紅蓮圓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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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포장지 없는 녹인원차(無紙錄印圓茶)
50년대와 60년대 20여년 중 중국대륙 사회에서는 시대적으로 대 격동기였다. 자유개인경영형태에서 강박에 의한 조합합작사형태의 공유화(公有化) 또는 국유화(國有化)하여 인민공사(人民公社)형태로 바뀌었다.

60년대 중기 시작한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운남푸어차의 생산에도 득실(得失)이 있었다. 불안정한 정세 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많은 차창(茶廠)들은 이름없는 푸어차를 만들어 포장지가 없이 대 광주리나 큰 나무상자에 넣어 판매하였다. 이때는 이미 상표의 중요성에 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국유화 상태였고 또한 포장지를 절약하는 의미도 있었다. 맹해차창도 갑을녹인포장지를 다 사용한 뒤 장기간 동안 포장지 없는 녹인푸어원차를 생산하였으며 이를 무지녹인(無紙錄印)이라 칭했고 이들 푸어원차를 녹인두(錄印頭)라고도 불러졌다.




수장가들은 여기서 좋은 푸어차를 찾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무지 녹인차는 상당히 많은 양이 생산되었으며 진화와 품질, 차성 등이 모두 큰 차이가 있었다.

많은 상인들은 당시 많이 유행한 상표의 포장지로 이들 무지 녹인차를 포장하여 시중에 유포하여 진품처럼 유통시켰다. 이와 같이 만든 것 중에 가짜 홍인이 가장 많은 상인들에 의해 유통되었고 혹은 내비를 제거한 후 조기적(早期的) 차로 둔갑 소비한 상인도 있었다.

심지어는 이상의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무지 녹인차 그대로를 "무지홍인(無紙紅印)"이라 하여 홍인원차 가격으로 대량 판매하였다. 이들 차 중에는 비교적 진화가 빠르고 부수어진 차는 조기홍인산차(早期紅印散茶)로 팔기도 하였다. 무지녹인(無紙錄印)은 이미 가짜 고급 차를 만들기 위한 제 1순위 후보차였다. 무지 녹인원차의 차 품은 극히 복잡하고 차성 또한 불규칙하게 고르지 못하며 동시에 차의 수량은 자못 많았다. 이는 푸어차 시장에서





대자녹인원차(大字錄印圓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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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기 위한 쟁탈전의 대상에 제일의 차품이 되었다. 일반 푸어차 가게에서 무지 녹인 중 홍인원차품에 비할 수 있는 미품(美品)을 찾아 환희하는 자도 볼 수 있고 한편 저가로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부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홍연원차는 무지녹인차 중에서 골라낸 좋은 차로서 앞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대나무에 포장하여 1952년 맹해차창에서 홍콩에 판매한 무지녹인차이다.

차성과 품질이 아주 우수하고 수량도 그다지 많지 않은 녹인두 푸어원차로서 본인이 홍연원차(紅蓮圓茶)로 이름을 지은 좋은 푸어차이다. 푸어차 도매상 류선생의 홍콩 금산루(金山樓) 차창고에서 2상자(1상자 12통)의 홍연원차를 찾아내어 당시 보통의 무지녹인차로 대만에 팔았다.



차의 품질이 우수하고 여러 푸어차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차로서 현재 홍콩에는 적지 않은 무지녹인이 있으며 대만지구 수장자들 또한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그 차중에 홍연원차도 소량 섞여있다.

경험이 풍부한 푸어차의 전문가들이 이 차성과 내비등을 감정한 결과 홍연원차는 맹해차창 산품으로 원료는 이무정산에서 온 것으로 3∼5등급의 차청을 사용하였고 난초향으로 설면생진의 좋은 차로서 진화년도도 비교적 오래되었고 차운은 무지녹인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수성이 두텁고 미끄러우며 맛은 옅은 단맛에 목에서는 달고 윤기있는 느낌이 있다.

차의 몸통은 얇고 차의 둥근 형이 규칙적이 아니며 심지어 타원형도 있고 형체가 많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많다. 그러나 차의 몸통은 상당히 결실하고 어떤 차는 면포에 누른 흔적이 역력하며 이는 무지녹인압 제조 기술의 특징이다. 찻잎줄기는 길며 금색의 차싹이 섞여 있으며 차의 면은 회녹색에 유광이 나고 전형적인 무지녹인차의 안색(顔色)이다.(소장중임)





대자녹인원차(大字錄印圓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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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녹인원차는 맹해차창이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계속 무지녹인원차를 생산하다가 운남칠자병차표가 출현 대체하게 되었다. 대자녹인과 후기홍인 인쇄판 모양 자체 도안 등이 아주 같았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 말까지 맹해차창의 주요 차의 생산품은 홍차 녹차 그리고 푸어원차였다.

푸어차는 후기홍인과 대자녹인 위주로 생산되었으며 동시에 차청의 수집도 광범위하여 차의 품질에도 차이가 많았다. 연꽃향 또는 난초향, 장향, 청향 등 다양하였고 차맛, 차운, 차기 등도 변화가 크다. 같은 대자녹인 포장지를 사용한 차 가운데도 차성과 차의 질이 크게 다르다. 이 차 중에서도 비교적 오래된 차의 품질은 우량하며 근래 홍인푸어차의 인기상승으로 상인들은 비교적 좋은 대자녹인원차 또는 갑을녹인의 외포지를 벗겨 낱개의 병차로 홍인원차로 팔아 폭리를 취하는 사례도 있다. 대자녹인원차는 차성과 품질이 고르지 못하나 좋은 차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비교적 좋은 차청으로 생차청병 공정으로 제조되었고 대부분 저장과정이 건창청결(乾倉淸潔)하여 많은 푸어차 애호자들은 보배를 가려내는 심리로 구매 소장하여 부의 극대화에 도전하고 있다. 검은 줄기에 누런 싹으로 차의 면은 대단히 맑고 윤기가 있고 난초향에 수성은 가늘고 부드러우며 진기가 짧아 조기홍인 동경노호의 계승차품이 될만하다.




소자녹인(小字錄印)
푸어차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소자녹인원차는 그 수량이 많지 않다. 차의 외포지의 자체 및 도안이 하관차창(下關茶廠)의 제조설계인 원차철병의 외포지와 완전히 같다. 차의 몸통이 비교적 작고 직경은 약20㎝로 전통적 제조방법으로 만든 차다.

통(筒)으로 된 차는 볼 수 없고 단병(單餠)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외포지로 볼 때 소자녹인은 하관차창 산품이 아닐까 한다. 현 하관차창 풍창장에게 소자녹인에 대하여 자세한 상황을 문의해 본 결과 구체적인 인상(印象)과 문자자료가 없어 하관(下關)차창 산품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차를 직접 마셔보고 추론해 본 결과 차성은 복록공차와 거의 같고 차청은 하관차창지역인 봉산일대 차산일 가능성이 높다. 단 내비는 맹해차창 내비를 사용하여 무지녹인차품이 아닐까? 다른 한편 맹해차창 산품인 무지녹인원차에 다른 포장지를 사용 판매한 것이 아닌가? 하관차창 산품이든 아니든 소자녹인은 노차수(老茶樹)차청으로 생차건창한 신선한 차품으로 상당히 고급 푸어차이다.


<소자녹인 내비>


칠자병(七子餠)

문화혁명때 정자체 녹인병포장지를 간자체 병포장지로 바꾸면서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에서 운남칠자병(云南七子餠)으로 개칭되었다. 문화혁명이후 영문으로 병기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칠자병(七子餠)은 현대의 녹인푸어차이다. 그 중 맹해차창 산품인 칠자(七子)병차 중에는 2종이 있는데 70년대에 단순차청으로 만든 홍대칠자병(紅帶七子餠)과 80년대에서 현대까지 만든 여러 등급의 차청을 섞어 만든 황인칠자병(黃印七子餠)이 있다. 이들 두 종류의 칠자병차는 모두 신차 차청으로 전자는 생차 방식 후자는 경도의 숙차 방식으로 만들었다. 신푸어 생차와 숙차의 차품의 기질(氣質)과 품미(品味)가 장래에 볼 수 있을 것이다.


홍대칠자병, 황인칠자병





황인원차(黃印圓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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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문인(文人) 단췌(檀萃)는 "전해우형표"에서 말하기를 크고 둥근 것은 긴단차, 작고 둥근 것은 여아차라 하고, 상인들이 판매용으로 차의 겉표면은 고운잎을 속은 거친 찻잎을 섞어 만든 것을 개조차(改造茶)라 하였다라고 묘사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차상인의 상행위와 차의 품질이 좋게 보이게 하고 또 고객을 끌기 위하여 취한 행위와 푸어차의 원료 배합들을 알 수 있다. 대략 50년대 말에 후기 홍인과 후기녹인의 연대로 중차패 표지 중에 `차`자를 황색으로 사용해 만든 푸어차를 우리들을 황인원차라 했다. 이 황인원차의 수량은 많지 않았으며 현재 발견된 이 황인원차는 크고 작은 두 종류의 차병이 있다. 큰 것은 대황인(大黃印), 작은 것은 소황인(小黃印)이라 부른다.



옛날에 개조차를 만들 때는 상인들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고 맹해차창에서 황인원차를 이렇게 만든 것은 판매를 촉진하고 상품의 유통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만들었다.

황인원차는 현재의 칠자병차의 전신으로 현대적으로 푸어차를 만드는데 차청의 혼합비율의 시초가 되었다. 이전에는 운남의 푸어차 밭은 모두가 교목차원으로 필히 나무 위에 올라가서 따거나 사다리를 놓고 따야했다.

등에 쌍 광주리를 짊어지고 양쪽에 쌍 자루를 끼고 윗도리는 크게하여 입고 노차(老茶)잎은 2급으로 나누어 쌍 대광주리에 나누어 담고 중장엽(中壯葉)도 이분(二分)하여 옆구리 자루에 따로 담고 아주 여린 1급 잎은 윗저고리에 담아(가슴에) 공차용으로 사용했다.


황인원차 내비

어린 싹은 하향(荷香:연꽃향)이 나는 산차(散茶)를 만들고, 중장(中壯)급 차청은 난초향과 장향(樟香)의 원차를 만들었다. 동경노호원차 홍인원차 등은 모두 이들 차청으로 만들었다.

황인원차는 차청을 섞어 쌓아 놓은 중장엽 위주의 찻잎에 여린 찻잎을 섞어 현대적인 개조차를 만들었다. 원래 여린 차싹과 중장엽의 차성은 같지 않으며 솜 털이 난 여린 찻잎의 차성은 은은하고 안정적이다. 이차에서 많은 햇 차싹머리를 볼 수 있고 이 햇차싹두가 진화한 뒤에는 황금색으로 변화하여 황색 차자(茶字)를 사용하게 되었다.

제작과정 중 어느 정도 발효된 차청으로 구식압제 금형에 의해 만들었으며 차가 상당히 단단하며 차성은 푸어숙차의 특색으로 나타나 푸어차 원래의 향은 없어지고 대단히 무거우며 은은한 장향이 실처럼 가늘게 느껴지며 대체로 모두 숙차 본래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 수성은 부드럽고 맛은 은은한 단맛에 후운(목에서 우러나오는 기)은 달고 윤기가 있다. 차의 기(氣)는 강하고 차를 타 마실 때 큰 차주전자에서 우려 큰잔에 가득 따라 마시면 해갈과 건강 음료로서 적합하다.







원차철병차(圓茶鐵餠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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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초 중차공사(中茶公社)에서는 소련과 신민주주의국가에 차잎교역을 확대하기 위한 "확대소신소(擴大蘇新銷)" 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받아 하관차창건설계획을 세워 과거 푸어원차 제조기술을 개량하여 설계시 차모양을 뜨는 금형을 전부 금속으로 하고 면포대의 지금까지의 차형 뜨는 것을 사용치 않았다.

특별히 맹해차창에서 공급받은 차청으로 원차철병이 만들어졌다. 중국차경(中國茶經) 제 249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압타차(關壓 茶)는 전서 맹고, 봉산, 대차산(서쌍반나 사모)등지에서 하관차창 창설용으로 배급제조" 원차철병을 판매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각지 차상인으로부터 차가 너무 단단하여 차를 탈 때 부수기 어렵고 진화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홍코의 상인들은 습관적으로 습기를 가하여 쾌속숙성 진화시켜 찻집에서는 국화를 띄워 국화푸어차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차가 너무 단단하여 수분의 침투가 쉽지 않아 일정하게 띄우기(숙성)가 어려워 환영받지 못하였다. 하관차창은 이로 인하여 쇠금형 원차철병의 생산을 중단하였으며 최초의 철병형 차품이 되었다.



1993년 11월 13일 일본인 참관단이 하관차창을 방문시 방문기념으로 1병(餠)을 창장 풍영배씨가 방문단에 정증하여 진귀한 선물이 되었다. 원차철병은 서쌍반나경내 6대차산의 제일 좋은 푸어차청으로 만든 차이다. 그 당시 맹해차창에서는 후기홍인원차등을 위탁 민간제조차창과 공동으로 합작 제조하였다. 맹해차창에서는 후기홍인원차와 같은 질의 차원료를 하관차창에 보내 만든 것이 원차철병이다.

그래서 원차철병의 차성와 품질은 홍인조기와 후기의 중간적인 입장에 놓인 차로서 그 차향기도 조기 홍인의 난향과 후기홍인의 야장향의 중간인 청장향(靑樟香)으로 원차철병이 청장향 푸어차품의 대표차이다. 차가 너무 단단하여 찻잎 속에는 공기 접촉이 거의 없어 이미 4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진화속도가 느려 같은 시기의 차에 비해 차운(茶韻) 미도(味度)등이 신선하고 맑은 단맛과 수성이 활발하여 설면생진(舌面生津)의 경계에 있다. 원차철병은 아주 풍부한 젊음의 개성과 활력이 충만한 미(美)를 지니고 있는 차로서 푸어차에서 가장 탐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아주 좋은 차이며 소홍인(小紅印)이라 불려지기도 하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상당량의 원차철병은 태반이상이 매변이 있는 차로서 홍콩으로 운반되어졌다. 차의 외포지는 미술자체의 도형으로 소자녹인과 같다. 맹해차창의 외포지인 정해자체와는 같지 않다. 때문에 당시 일반 상인들은 보통의 하관차 품질로 대접받았다. 차가 너무 단단하여 모두 습기 찬 창고에 넣어두었다. 이때 일부 극소량이 구석진 곳에 쌓여있어 매변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으며 이들 차들이 현재 아주 훌륭한 차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은 이와 같이 훌륭한 60년대 산 원차철병의 매변현상이 있는 차를 칠자철병(七子)으로 대치 판매하여 고기눈을 진주로 파는 이익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일반 푸어차를 하는 사람들은 이를 감별할 능력이 충분치 못하여 좋은 원차철병을 선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얻은 원차철병을 정밀 감별해 본 바 매변이 없는 차의 곁표면은 황금색에 유광(油光)을 뛰고 동시에 차의 변두리가 아주 작게 떨어져 나가 울퉁불퉁하게 일정하지 않은 요철(凹凸)형국이었다. 매변이 지나간 차의 표면은 짙은 어두운 색으로 유광(油光)의 밝기가 부족하다. 차의 몸통이 아주 고르고 변두리가 단단하고 두꺼워 차를 쪼개어 내부를 보면 검고 푸른 곰팡이가 있다. 어떤 차의 몸통은 비교적 푸석하고 암율색(暗栗色)으로 파괴되었고, 떨어지고, 부서져 그 원인은 습창진화가 너무 되었기 때문이다.


<원차철병>


<하관차창장과 저자>


칠자(七子)철병의 표면은 회암색이고 차의 줄기는 비교적 가늘고 길며 튀어나오고 현저하게 흑녹색 곰팡이를 볼 수 있다. 원차철병과 칠자철병은 크기가 같다. 전체적으로 느끼기는 원차철병이 칠자철병보다 크게 느끼기는 칠자철병은 차의 표면이 평평하고 원차철병은 완만한 곡선의 사발모양이기 때문이다.

풍청장의 경험에 의하면 3∼4개의 원차철병을 검토해본 결과 건창에 곰팡이가 없는 좋은 차품이다. 곰팡이가 지나간 차성과 맛은 칠자철병과 같다. 이미 원차철병의 푸어차 특성을 잃었다. 홍인의 외포장지를 사용한 원차철병이 홍콩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것은 상인의 말에 의하면 맹해차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하관차창의 원차철병이 홍인 외포지를 사용하여 맹해차창에서 나왔을까? 혹은 맹해차창에서 시험적으로 만든 차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개인적으로 1병을 얻어 감정해 본 결과 원차철병푸어차로 곰팡이 흔적이 있고 차성 품질은 칠자철병과 같고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상단:좋은차(건조)하단:매변(건조불량)



<원차철병 금속 금형>






칠자철병차(七子鐵餠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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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하관차창의 원차철병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른 사실을 타차창에 알리지 않아 60년대 초 곤명차창에서 하관차창처럼 철재금형으로 칠자철병푸어차를 제조하였다.

수량은 얼마나 제조했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시중에서 볼 수 있다. 칠자(七子)철병은 내비(內飛)가 없고 통포장도 보지 못했다. 차를 포장한 종이는 면지로 도안과 글자는 원차의 설계로 운남칠자병차(云南七子餠茶) 상표를 인쇄하여 처음으로 운남칠자병차 상표를 이 차가 사용하였다. 이 차의 차청은 어디서 온 것일까? 차품은 곰팡이가 있고 감정 중 확실한 것은 곤명일대의 차청으로 만든 차일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고 차의품질은 차급(次級)의 상당히 좋은 차이다.




손으로 비빈 것이 확실하고 잎의 줄기가 가늘고 길며 고르다. 생차로 제조한 차이나 아깝게도 건조정도가 미숙하고 수분의 함유가 많아 대부분 심한 곰팡이로 변하였다. 본인이 접촉한 칠자철병 중에는 곰팡이 흔적이 없는 것을 보지 못했다. 탕색은 검고 수성은 두텁고 미끄러우며 후운(목에서 느끼는)은 단맛이 돌아 나온다. 물맛은 무겁고 차의 기는 강하다. 아주 은은하게 약한 장향(樟香)이 있다.

이차는 매변(곰팡이)현상이 오래 전에 지나가 곰팡이 맛은 없고 니기향(泥氣香:흙향)으로 바뀌었다. 탕맛은 입안에서 찌르는 감각이 있다. 큰 주전자에 타서 특히 땀을 많이 흘린 뒤 큰잔으로 두어 잔 마시면 해갈과 체력 정신회복에 효과가 좋다. 곰팡이가 생겼던 차는 차 중에 누룩균이 남아 있어 지방(脂肪)과 혈압을 내리는데 유효하고 담을 삭이는데 효과가 좋아 일본 차 시장에서는 이 매변푸어차를 요조차(窈窕茶:예쁘게 하는 차라는 뜻)라고 부른다.

85년 12월 호 일본의 "健康"誌에 위의 차의 곰팡이는 특히, 고혈압, 당뇨, 거담 및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되자 수요가 급등하여 거의 시장에서 이 차가 품귀되었다. 90년에 발견된 광운후기원차가 이 차와 같은 곰팡이가 발견되었으나 광운공병의 차품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소량 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혁대병(文革大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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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수관목 대엽종차이다. 문화혁명시 제조된 차로 차의 기가 강하고 지금까지의 푸어차보다 크다.

가벼운 숙병 발효 후 계속 발효된 차로서 아직도 강한 차성이 남아 약간 쓰고 떫은맛이 있다. 마신 후 인후에서 단맛이 나오는 좋은 차이다. 건창 보관되어 비교적 발효가 늦은 편이다. 시중에는 초기의 진품은 희소하여 구하기가 쉽지 않다.(소장중임)








<문혁대병 외포지의 도안자>



< 문혁대병차통 >





운남칠자병차 처음 포장지




<원차철병 내비

 


황인원차 포장지 글자












<대자녹인 내비>


<대자녹인 차통>





< 홍연원차 내비 >


< 홍연원차 차통 >

 

출처 : 푸어차의 종류 - 보이차 (12)...(각종 보이차의 사진과 설명)
글쓴이 : 아란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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